어둠 속으로 들어가 진실을 밝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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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이 완전히 끝장난 날. 만약 그런 날이 정말로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거리를 두는 게 정답일 것이다. 실제로 <다크 플레이스>의 주인공 리비 데이는 그렇게 살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완전히 벗어날 순 없어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변변한 직장 하나 없이 매일 자살하는 공상을 취미인 양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고 있다. 순전히 25년 전인 1985년 1월 2일 바로 그날 때문이다.

「다크 플레이스」 한국어판 표지

「다크 플레이스」 한국어판 표지

당시 일곱 살이던 그는 하룻밤 새 엄마와 두 언니를 동시에 잃었다. 오빠 벤이 가족 셋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옷장 안에 숨어 있던 막내 리비는 겨울바람을 헤치고 집 밖으로 달려나가 홀로 살아남았다. 물론 25년이 지난 지금은 딱히 벤을 증오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 리비는 법정에 서서 살인범으로 벤을 지목했고, 벤은 지금까지도 수감 중이니 그로서는 할 일을 다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통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계속된다. 그동안 후원금에 기대 살던 리비는 자립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면서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이때 마침 아마추어 탐정 모임인 ‘킬 클럽’이 그에게 접근해 ‘그날’의 증거를 제시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간 모임에서 이제껏 한 번도 의심하지 않던 그날의 새로운 가정과 마주한다. 자료를 수집해 사건의 진상을 재구성한 클럽 회원들은 한목소리로 벤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위증을 비난하는 듯한 논조와 다른 증인들의 증언 철회와 같은 새로운 사실들에 당황하던 리비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서둘러 귀가한다. 킬 클럽 회원들의 말 그대로 리비는 벤이 가족을 참살하는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리비는 절대로 다가서려 하지 않았던 그날의 진실을 부러 파고든다. 우선 가족의 소지품이 담겨 있는, 25년간 단 한 번도 손댈 수 없었던 가방을 힘겹게 연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벤을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늘 돈을 뜯기 일쑤였던 이혼한 친부 러너를 의심하는 등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과 접촉하며 수사하듯 한발씩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동시에 25년 전 리비의 엄마 패티와 오빠 벤에게 번갈아 시선을 내어주며 1월 2일의 일과를 촘촘히 파고든다. 사건이 벌어진 밤을 향하는 과거와 함께 리비의 현재 또한 역동하듯 흘러간다.

길리언 플린의 두 번째 소설 <다크 플레이스>는 리비가 그날의 기억을 에두르지 않고 ‘다크 플레이스(어두운 곳)’라 표현하는 그대로 어둠에 접근해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포괄적으로 활용한다. 어둠 속에 묻힌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아니라 리비 스스로 주체가 되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태도 역시 그렇다. 그래서 세 인물이 교차하며 진실을 조합하는 방식만큼은 전형적일지 몰라도 이를 섬세하게 조율해 진실을 유예하고 동시에 모두를 의심케 하는 능력은 감탄할 만하다.

모함과 오해가 모이고 모여 결국 파국을 향해 나아가는 과거의 이야기가 의외의 진실을 밝혀냄과 동시에 치유의 미래로 이어지는 결말은 그래서 더 산뜻하다. 결코 일어설 수 없을 나락에서 시작해 마침내 리비 스스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고된 여정 내내 독자와 함께하는 실로 멋진 소설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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