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메탈 상징 ‘린킨 파크’ 추억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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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록 밴드 린킨 파크가 10월 초 특별한 앨범을 발표했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2000년 출시된 1집 <하이브리드 시어리>의 확장판을 낸 것이다. CD 5장, LP 4장, 카세트테이프 1장 등으로 구성된 이 화려하고 묵직한 음반에는 무려 80편의 노래가 실려 있다. 앨범은 1집의 오리지널 수록곡들을 비롯해 데모 음원, 공연 실황, 리믹스 버전 등을 담아 린킨 파크의 초창기 활동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린킨 파크(위)의 <하이브리드 시어리> 20주년을 맞아 발매한 디럭스 앨범

린킨 파크(위)의 <하이브리드 시어리> 20주년을 맞아 발매한 디럭스 앨범

호화로운 구성을 보고 너무 성대하게 잔치를 치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는 이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린킨 파크가 누린 인기를 확인하면 결코 야단스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된다. 스트리밍이 음악 청취의 주도권을 잡기 전에 나온 린킨 파크 1·2·3집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 팔렸다. <하이브리드 시어리>는 올해 9월 기준 미국에서 1200만장 넘게 판매된 것으로 조사됐다. ‘인 디 엔드’, ‘넘’, ‘섬웨어 아이 빌롱’, ‘왓 아이브 돈’ 등 히트곡도 다수 보유했다.

린킨 파크는 대중음악계에 선명한 업적도 남겼다. 1990년대 중반 들어 록 음악 신에는 헤비메탈과 그런지, 펑크(funk),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성분을 버무린 혼종 장르 뉴 메탈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린킨 파크는 이 사운드를 중심에 두면서 포효하는 고음의 보컬, 박력 있는 래핑, 세찬 턴테이블 스크래칭 연주를 겸해 뉴 메탈이 지닌 날카로움과 원기를 극대화했다. 이로써 린킨 파크는 뉴 메탈의 상징적인 밴드가 됐다.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함으로써 ‘21세기 가장 많이 팔린 록 앨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된 <하이브리드 시어리>는 린킨 파크가 세운 뉴 메탈의 또 다른 상징이다. 여러 양식을 혼합했음에도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어울리고 진행도 깔끔해서 조금도 산만하지 않았다. 명쾌한 멜로디와 귀에 잘 익는 루프는 듣는 이로 하여금 드센 소리를 기꺼이 즐기도록 한 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록 앨범’ 부문에 후보로 호명된 것은 준수한 완성도를 설명한다.

가사도 린킨 파크의 성공을 돕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리드 싱어 체스터 베닝턴은 성적 학대, 부모님의 이혼, 약물 복용 등 어린 시절 겪었던 문제들을 곱씹으며 노랫말을 지었다. 때문에 <하이브리드 시어리>는 긴장과 초조함, 불안감, 분노 등을 표하며 내내 어두운 분위기를 띤다. 하지만 우울한 내용의 노래들은 삶에 치이고,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또래 청년들에게 오히려 동감과 위로로 다가왔다. 덕분에 린킨 파크는 청춘의 대변자로 등극했다.

한때 큰 인기를 얻었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뉴 메탈이 빠르게 쇠퇴하면서 린킨 파크의 입지도 점점 좁아졌다. 2017년에는 체스터 베닝턴이 스스로 세상을 등짐에 따라 본래의 린킨 파크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이번 <하이브리드 시어리> 디럭스 앨범은 뉴 메탈이 사어가 된 시대에 그 장르와 린킨 파크의 전성기를 추억할 마지막 무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으리으리한 구성 뒤에는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이 자리한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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