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논쟁화되는 재정준칙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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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의 재정준칙이 제출되었다. 여당의 반대 때문에 지연 제출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아직도 여당 의원들 특히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의 반발은 크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재정에 대한 이슈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있다. 이번 기재부 발표에 대해서도 보수매체들은 재정준칙이 맹탕이라며 공격하고 있고, 진보매체는 복지지출의 발목을 잡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당 의원들은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지출이 극복의 대안인데, 재정준칙은 이러한 비상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해 정책의 실행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첫째, 한국의 재정상태는 어떤가. 지난달 한국은 마이너스 국채발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정적 성과를 자랑했다. 평소 빚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마이너스 채권이다. 돈을 빌려 이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받는다는 개념이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정도가 발행하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와 장기적인 저성장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2019년 우리나라 재정수지 비율은 GDP 대비 -0.6%로 OECD 평균 -3.3%보다는 건전했다. 건전성 순위는 OECD 비교대상 36개국 중 19위였다. 2021년 예산안 우리나라 재정수지 비율은 올해보다 개선된 -3.6%이다. OECD 재정건전성 순위 2위를 유지했다. 순위가 크게 올라간 것은 방역에 비교적 성공하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투입했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으나, 재정의 역할이 다른 나라보다 부족하다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또한 OECD 국가 중 재정 여력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둘째, 이번 재정준칙 도입에 대해 기재부에서는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사의 경고를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더 영향력이 큰 무디스사는 우리나라가 재정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재정여력에 대해 현재보다 2배 이상 빚이 증가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무디스는 지난 5월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 등급은 3번째로 높은 것이며 프랑스, 영국 등이 같은 등급이다. 일본은 한참 뒤에 있다. S&P도 4월 내년에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반등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다수가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반대를 무릅쓰고 이러한 정책을 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셋째, 60% 국가채무라는 기준은 적정한가? EU는 통합과정에서 1992년에 3%, 60%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많은 국가가 가입을 위해 EU의 준칙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 평균 채무 수준은 GDP 120%를 넘은 상태이다. 이미 60%는 더 이상 기준이 되지 않고 있다. 이 사례 이외에는 국제적인 적정부채 기준은 사실상 없다. 최근에는 금리가 이렇게 낮은 상황에서는 대규모의 국가채무 증가가 큰 문제 없다는 주장이 대두(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블랑샤르)되고 있다.

물론 무한정 국가채무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위기 와중에 선진국들의 국가채무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코로나19 이후 어느 수준이 새로운 한도가 될지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기준인 60%로 잡고 보자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재부는 지금은 60%로 도입하지만 5년마다 국민합의를 통해서 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국민합의란 것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일단 도입되면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를 국가가 당면한 과제까지 고려해 그것을 달성하면서도 국가채무를 관리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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