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불신과 싸우는 초창기 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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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란 직업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요즘이다. 범죄를 추적하는 시사프로그램의 간판 자문으로 얼굴을 알린 이도 여럿에, 심지어 프로파일러 출신 국회의원까지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프로파일러는 주로 일반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이나 이상범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과 범인의 행동 특징을 분석하여 용의자의 범위를 한정하는 ‘프로파일링’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지 현장의 몇몇 정보만으로 용의자의 성별, 나이, 직업은 물론 생활 및 성장 환경까지 압축하는 프로파일링은 일종의 마술처럼 보일 법하다. 마치 셜록 홈스가 상대를 쓱 한번 훑어본 다음 그의 이력을 줄줄 읽는 것과 비견할 만한.

<인어의 노래> 한국어판 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인어의 노래> 한국어판 표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그러나 프로파일링은 마법 같은 게 아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던 SF소설가 아서 C. 클라크의 말을 되새겨보자. 그리고 본디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은 덮어놓고 괄시받게 마련이다.

범죄 스릴러 장르에서 일선 경찰들은 대부분 프로파일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에게 있어 정통적인 수사란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추적해 선택지를 지워나가는 행동이다. 반면 프로파일러는 그 여러 가능성을 단번에 제거부터 한다. 그러니 경찰이 보기엔 책상물림이 지어낸 탁상공론일 뿐 아니라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행위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프로파일링은 피해자와의 연고나 일반적인 범행의 목적과도 무관히 대상을 무작위로 선별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해지는 추세다. 그로 인해 점차 픽션에서도 크게 활약하지만 주위의 반대 세력과 모종의 알력 다툼을 벌이는 광경만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995년 발표한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는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초창기 프로파일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영국 브래드필드에서 고문 흔적이 남은 사체가 발견되지만 경찰은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윽고 네 번째 피해자가 나타난 다음에서야 경찰은 내무부 소속의 범죄 프로파일링 태스크포스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토니 힐 박사를 초빙한다. 물론 토니 힐은 마법사가 아니다. 경찰의 불신과 싸우며 유일하게 자신을 보조하는 캐롤 조던 형사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그는 늘 명철한 과학자의 선을 지킨다. 더욱이 직접 고문 기구를 제작해 피해자를 납치, 고문, 살해하는 범인의 일지가 수사 과정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교차하며 자아내는 심리적 압박감은 그대로 토니 힐의 위기와 맞물린다.

토니 힐은 뛰어난 프로파일러이긴 하지만 동시에 유약한 속내를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어둠에 심취한 인물이기도 한 탓에 그 공포감은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잔인한 범행 묘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매력적인 외모에도 성적인 능력에 문제가 있어 일부러 조던과 거리를 두는 힐의 태도는 그의 프로파일링 능력 이상으로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자비한 연쇄살인범과 맞닥뜨린 ‘약자’ 토니 힐의 기개가 곧 멋진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고.

저자 발 맥더미드는 영국 범죄 스릴러계의 대모라 불린다. 오랫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으며, 전업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앤서니상·배리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공히 인정받았다. <인어의 노래>는 영국범죄소설가협회가 그해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토니 힐은 너무나도 흔해진 연쇄살인범을 재해석한 훌륭한 대항마로 여전히 활약 중이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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