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낫기만 하면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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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먹고 살아?”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 차마 묻진 않는다. 내 지갑 사정을 배려하는 낌새는 있다. 원래 돌아가며 계산하던 친목 모임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누구도 내게 계산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긴 아내는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듣기만 해도 돈 많이 들어갈 것 같은 병을 치료하고 있고 남편은 아내를 돌보겠다며 백수가 됐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암환자에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환자의 완치를 위해 중요하다. 출근길에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암환자에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환자의 완치를 위해 중요하다. 출근길에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가끔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밥벌이는 어떻게 하냐고. 그럴 때마다 웃으며 대답한다. “있는 돈 까먹고 살죠.” 실제로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까먹고 있는 건 팩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에게는 보험이 있었다. 아내 명의의 암보험과 실비보험이 있었고, 병원비는 이걸로 해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내의 회사에서는 병가 중에도 급여를 일부분 지급해주고 있다. 나 역시 틈틈이 여기저기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고료를 받는다. 모아놓은 돈과 보험금, 달마다 들어오는 돈이 있으니 우리는 그나마 도움받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 편이다.

아무도 고민해주지 않는 치료 후 삶

그래도 지금의 삶은 시한폭탄 같다. 터지기 전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난 원래대로 복귀할 거야’라는 우리 집 암환자의 믿음은 타이머 역할을 한다. 이런 믿음이 끊어진다면 터질 거다. 이 믿음은 환자의 완치를 위해서도 꽤 중요하다.

외부인의 눈에는 암병동에서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냥 ‘암환자’로 보이겠지만, 이들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꿈을 위해 노력했을 거고 찬란하고 반짝했던 자신만의 시간을 누렸을 거다. 그랬던 사람들에게 암을 경험하고 ‘암환자’였다는 꼬리표만 남는다면 아무리 이겨내자고 격려한들 먹혀들 리 없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환자에게 정말 중요한 항암제다.

40대까지의 나름 젊은 환자라면 이전의 삶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 한창 일할 나이, 꿈을 좇던 나이 그리고 누군가의 가장일지도 모를 나이인 그들에게 이전의 삶이란 집으로 무사히 귀환하는 것, 그리고 일터로 무사히 복귀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건 어떡하니”라는 주변의 동정 어린 걱정이 지겹고 듣기 싫을 때, ‘복귀’는 이 모든 걸 단번에 잠재울 수 있다. 잠깐이나마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와이프 회사는 어떻게 됐어?”였다. 모두 아니까 물어보는 거다. 암환자라는 원치 않는 꼬리표를 달면 한국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린 암을 부정적인 결과물로 인식한다. 조상 중에 암환자가 있거나, 나쁜 생활 습관 때문이거나,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돼서 암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한다. 그런데 아내처럼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도 적지 않다. 입원 초반, 이 병에 왜 걸려야 했는지 괴로워하고 있을 때 주치의가 그랬다. “그냥 운이 없어서죠. 환자 잘못이 아니에요.” 이 병을 불러온 염색체 돌연변이가 어떻게 생긴 건지 현대의학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이렇게 운이 없어 암을 경험하는 사람이 1년에 대략 20만명이다.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20~40대 환자로만 추리면 대략 4만명이 넘는다. 경력을 이어가는 데 애먹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다. 매년 쏟아지는 젊은 암 경험자들의 치료 이후 삶에 대해 고민하는 건 암환자와 가족뿐이다. 사회는 고민하지 않는다. 치료 후 삶을 돕는 사회적 안전장치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나이에 속하기에 소득이나 경제적 형편을 기준으로 삼는 여러 지원에서 제외된다. 내가 만약 외벌이 가장인데 암을 겪었다면? 수입이 줄어들어도 재산이 있거나 노동할 수 있는 나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안전망이 제공하는 혜택은 거의 없다. 환자와 가족만 불안한 미래와 끙끙 앓으며 씨름한다.

돌아왔다고 다 나은 건 아니다

“이전처럼 다시 일할 수 있겠지?” 혹시나 스트레스를 줄까 싶어서 나는 아내의 복직 문제를 입에 꺼낸 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건재를 과시하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걸 가장 바라는 사람은 환자 본인일 건데, 아내 역시 스스로 복직이란 단어를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처음으로 내년 상반기에 복직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 비하면 좋은 환경이다. 그래도 복직을 하고 나서 업무 스트레스를 잘 견딜 수 있을지, 혹시나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닌지, 주변의 시선을 감내할 수 있을지 보호자는 모든 게 걱정이다.

누구나 암을 경험할 수 있다지만 막상 그 어려움을 정확히 알기란 어렵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했다는 얘기에 “그럼 이제 다 나은 거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 병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이해를 바라는 건 어려운 작업이다. 여전히 혈액이 항체를 만들지 못하며 좀 있으면 아기처럼 예방접종을 시작해야 하고, 여전히 면역력이 약해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안 되고, 매달 혈액 검사와 유전자 검사를 해서 예후를 지켜봐야 한다는 걸 구구절절 설명하고 다닐 순 없으니 말이다.

직장에서도 암을 모르긴 마찬가지다. 일할 수 있으니 돌아오긴 했지만 ‘돌아왔으니 다 나은 것 아닌가’라는 시선 탓에 복직해도 현실적 어려움을 적지 않게 겪을 거다. 글을 쓰며 자료를 찾다 한 의료전문 매체의 조사 결과가 눈에 들어왔다. 암을 겪은 사람 중 42.3%가 직장 내에서 중요 업무에 참여하거나 능력 발휘 기회를 잃고 있다고 느낀단다. 직·간접적 퇴직 유도도 받고 있고,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것 같다는 대답이 적지 않다. 운 좋게 복직을 해도 또 다른 편견의 장벽과 부딪혀야 한다.

암을 경험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 이제 200만명에 달한다. 엄청난 숫자다. 할아버지·할머니만 있는 게 아니다. 암병동을 걷다 보면 젊은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그들은 “낫기만 하면 다 잘될 거야”라는 말에서 얼마나 위로를 받을까. 암이 국가적 문제라며? 그럼 치료 후 삶에도 고민하면 좋겠다. 젊은 암환자가 늘어서 걱정이라며? 그럼 그들이 낫기만 하면 원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해주면 좋겠다.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 모두를 개인이 감내하라는 건 참 잔인한 일이다.

<제이든 칼럼니스트·전 기자(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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