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대신 책 속으로 미술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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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예술사회학자 나탈리 에니히의 저서 <반 고흐 효과>를 접했던 2006년은 서점가에서 고흐의 인기가 ‘여전히’ 절정에 달했던 때였다. 한 미술출판 관계자는 “무슨 책이든 미술코너에서 반 고흐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다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고흐의 비극적인 인생부터 경매장에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그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은 대중이 알아야 할 상식이 된 것 같았다.

[문화프리뷰]전시장 대신 책 속으로 미술여행을

하지만 <반 고흐 효과>는 이러한 ‘고흐 현상’에 올라타는 대신, 그에 관한 ‘상식 101’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즉 고흐의 작품이 어째서 위대한 예술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흐가 어떻게 ‘예술이라는 종교의 순교자’가 되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고흐라는 존재가 마치 하나의 블랙박스 같아서 그 안으로 무엇이 들어가든 광기와 비극, 몰이해, 천문학적인 판매금액 등 유사한 결과물로 자동전환된다고 말한다. 고흐처럼 ‘천재 예술가’로 숭배의 전당에 등극한 파블로 피카소가 예술가로서 성공한 과정을 분석한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도 예술가에 대한 이해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한편 이러한 예술가들의 신화창조에 있어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갤러리스트는 작품을 사고파는 화상(畵商)을 말한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든 한번쯤은 갤러리 입구에서 ‘나 여기 들어가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갤러리가 멀게 느껴진다면 <갤러리스트>가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아트딜러, 갤러리스트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한국 화랑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는데, 이처럼 갤러리스트들의 활약을 실질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그동안 왜 그렇게 적었던가?’ 하는 것이다. 래리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나 에마뉘엘 페로탕 등 해외 주요 화랑의 갤러리스트들에 대해 조사한 실제 자료와 인터뷰가 책에 담겨 있어 화랑 관계자나 컬렉터는 물론 미술계 스타작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원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길잡이가 된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는 “미술사를 전공했으면서도 몰랐던 이야기를 이 책을 쓰면서 수없이 알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미술사에서는 보통 작품의 거래는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되는 12개의 갤러리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파트는 ‘갤러리 그 이후’를 준비하는 제롬과 에마뉘엘 드 누아르몽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작가발굴과 작품거래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 갤러리에서 벗어나 작업 프로덕션과 매니지먼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즉 작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발상이나 능력을 ‘발굴’하는 것을 넘어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그 능력이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표현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고흐가 누아르몽 부부와 만났더라면 그들의 매니지먼트에 만족했을까’와 같은 상상을 하며 책을 읽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정필주 예문공 대표·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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