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도시의 브랜드를 높인 상징적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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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테아트로’는 패션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전용 런웨이 장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이 건물은 2001년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아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완성했다. 네슬레의 오래된 초콜릿 공장이었던 낡은 건물은 전형적인 오페라하우스풍의 설계를 따라 얼핏 수도원처럼 보일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극도로 정교하게 디자인됐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5년 창업 40주년을 기념해 또 한 번 안도 다다오와 함께 아르마니 박물관을 개관하며 새로운 상징적인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최대 도시인 빌바오에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야경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최대 도시인 빌바오에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야경 /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2003년 일본 도쿄 아오야마에 들어선 ‘프라다’의 6층짜리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상징적인 건축물로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설계했던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드 뫼롱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총 네 가지 종류의 유리를 사용했다. 어떤 창은 안으로 밀려들어가 있는가 하면 밖으로 튀어나간 창도 있어 마치 건축물이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장 내부는 고급 목재로 바닥을 마감하고 상아색 카펫을 깔아서 마치 미술관 같다. 이 건물은 프라다의 설립자인 미우치오 프라다가 주도한 ‘에피센터 프로젝트’의 일부다. 패션이라는 문화적인 코드를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로 표현하면서 건축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디자인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 결과 지금은 단순한 패션 매장을 넘어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1997년 개관한 현대 건축의 대표작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프라다는 왜 상징적인 건축물을 지었을까? 트렌드가 한몫했다고 볼 수도 있다. 패션이라는 문화적 코드는 시대가 변하면서 거의 모든 산업의 요소들을 흡수하게 됐기 때문이다. 베르사체가 호텔을 짓고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프라다 에디션을 출시한 것도 좋은 예이다. 또 특색있는 건물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구매 경험을 안내하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건축물을 통해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가치와 수준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담을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물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중심지인 빌바오는 1970년대 중반까지 철강업과 조선업 호황을 누리며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한때는 인구가 100만명에 달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세계 철강산업의 중심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로 이동하자 이 지역의 철강업은 급속히 침체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도 지역 경기에 영향을 줘 빌바오는 점차 하향세를 걷는 도시가 되었다.

바스크 자치정부는 1989년부터 빌바오시의 새로운 도시재생의 방향을 담은 8대 방안을 시행했다.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이미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사업을 주요 대책에 포함해 혁신적인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기존 인프라를 정비하는 한편 도시 이미지를 높일 다양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미술이나 건축에 딱히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현대 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미국 철강계의 거물이자 세계적인 미술재단의 수장인 솔로몬 구겐하임의 애장품을 보관·전시하는 데서 출발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 격이다. 해체주의 건축의 대부인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약 7년 만에 완공했다.

주변 지역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 건축물은 모두 합해 60톤 상당의 티타늄 패널이 외관을 뒤덮고 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길이 130m, 폭 30m에 이르는 건물 바깥에 비행기 외장재로 쓰는 두께 0.3㎜의 티타늄 패널 3만3000여장을 붙였다. 이 얇은 금속판은 날씨에 따라 물결이 흐르듯 움직이며 시시각각 형태와 색상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까닭에 메탈 플라워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물고기 형상을 본떴다는 프랭크 게리의 말처럼 인근 네르비온강 건너에서 바라보면 흡사 물고기의 비늘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서자 빌바오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미술관이 들어선 지역은 과거 컨테이너 하차장으로 쓰였지만 이후 강 주변으로 보행자를 위한 산책로와 어린이 놀이터 등이 만들어지면서 시민들의 휴게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뿐만 아니라 쉐라톤 빌바오 호텔, 오스클루나 국제회의장 등 복합 컨벤션 센터도 들어섰고 빌바오 시내의 다른 미술관과 박물관들도 점차 활력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불러온 변화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개관 이후 1년 동안 136만명, 3년 동안 350만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당시 총 건설비용은 1억5000만달러(현재 환율기준 약 178억원)였는데 3년 만에 초기 투자액의 7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다. 바스크 지역경제에 미친 경제효과 역시 약 1600억원, 고용창출 효과가 9000명에 달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물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 결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현재도 연평균 1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가 통용되는 것도 미술관 하나가 도시재생 사업에서 극적인 역할을 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렇게 도시가 되살아난 것을 미술관 하나가 가져다준 나비효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빌바오 구겐하임의 성공사례는 상징적인 건축이 문화적 견인차 역할뿐만 아니라 도시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아직도 대다수 관광객은 미술관의 전시보다는 미술관 그 자체를 보기 위해 빌바오를 방문한다. 그리고 빌바오 인근 다른 바스크 지역의 도시나 관광명소에도 관광객들이 몰리며 주변까지 파급효과를 미쳤다. 이에 따라 바스크 자치정부도 도로, 항만, 공항 등 관련 인프라 시설에 재투자해 관광객의 편의성을 증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쇠락한 항구도시 빌바오는 국제적인 관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화산업의 혁신을 상징하는 동시에 최고의 브랜드를 나타내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김도환 브랜드 디렉터·㈜도빗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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