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 ‘DNA 매치’로 맺어진 ‘완벽한 사랑’의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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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인연, 운명의 상대. 로맨스 장르에 있어선 토대나 다름없는 말이지만 그만큼 판타지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갈구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한번 상상해볼 법하다. 만약 모든 사람에게 이 세상에 단 한 명 존재하는 운명의 상대를 짝지어준다면 어떨까. 세상은 핑크빛으로 물들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결국 인간은 새로운 결핍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존 마스의 <더 원> 한국어판 표지 / 다산책방

존 마스의 <더 원> 한국어판 표지 / 다산책방

<더 원>은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DNA 매치’를 통해 운명의 상대를 연결해주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리는 이렇다. 완벽한 짝을 만난 인간은 몸속의 가변 유전자가 페로몬을 분비하고, 상대방은 해당 페로몬에 정확히 반응하는 수용기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DNA 정보만 제공하면 매치 시스템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완벽한 반려를 찾아준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누구나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폭발’하는 듯한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심지어 DNA 매치는 동성애 혐오, 종교적 증오, 인종차별을 거의 사장 직전까지 몰아냈다. 성적 지향이나 피부색, 신앙심, 문화적 차이조차 유전자 정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물론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우선 DNA 매치 덕에 전 세계 약 300만쌍의 커플이 이혼할 것으로 추산된다. 오랜 세월 함께한 부부라도 ‘진짜 짝’이란 판타지에 매료된 나머지 반려에 대한 의심이 싹터 필연적인 이별로 이어진 탓이다. 덕분에 매치를 통해 만나지 않은 커플을 향한 세상의 시선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또한 지리적 위치를 감안하지 않은 매치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극단적으로는 상대가 90세 노인이거나 이미 사망한 경우도 있다. 결국 이 역시 누구나의 판타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판타지에 불과해 보인다.

<더 원>이 다루는 다섯 가지 이야기 역시 그렇다. 매치를 이용하는 다섯 인물 각각의 사례는 차례로 교차하며 ‘절대적인 상대’란 말에 서린 불완전한 요소들을 이끌어낸 다음 이를 슬그머니 스릴러로 수렴한다. 이혼녀 맨디는 용기를 내 매치 상대를 찾아가지만 하필이면 첫 만남이 그의 장례식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자의 가족은 맨디에게 냉동정자 수정을 강요한다.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의 상대는 자신을 쫓는 경찰이다. 사이코패스였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싹트면서 조금씩 흔들린다. 제이드가 영국에서 호주까지 날아가 만난 매치는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다. 그래서인지 운명의 상대에게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반면 그의 매력적인 동생에게 끌린다. 결혼을 앞둔 닉은 약혼녀의 권유로 매치 결과를 알아보지만 황당하게도 그의 매치는 남자다. 대기업 CEO 엘리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만난 매치는 유머러스하고 털털한 남자지만 뭔가 비밀을 감추고 있다. 아마도 엘리가 운영하는 기업이 ‘DNA 매치’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 원>은 지금까지 만나고 이별했던 모든 지난한 과정들은 이 완벽한 시스템이 없었기에 겪은 비극이 아닐까 싶은 원천의 희극을 아우른다. 동시에 ‘완벽한 사랑’이란 이름의 서스펜스를 다채로운 스펙트럼 위에 풀어낸다.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따라 점차 농밀해지는 스릴러의 맛이 무엇보다 알싸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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