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와 문화 소외계층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휴관에 들어갔던 미술관들이 철저한 방역 지침으로 무장하고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제한된 인원의 사전예약자 외의 관람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거나, 관람 시간대 사이사이 환기·방역을 위한 시간을 설정해 관내 잔류 인원을 내보내는 방식은 관람 문턱을 높이더라도 감염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한 운영 방침이라 할 수 있겠다.

대중교통시설에서 도보로 이동하기엔 먼 거리에 있는 대구미술관(위)과 부산현대미술관의 진입로 / 필자 제공

대중교통시설에서 도보로 이동하기엔 먼 거리에 있는 대구미술관(위)과 부산현대미술관의 진입로 / 필자 제공

여기에 QR코드 디지털 등록제나 온라인 전시 등이 더해진 것을 한국형 ‘거리 두기 관람’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다. 방역전문가부터 미술관 관계자에 이르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 새로운 시스템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아직 운영 초기이다 보니 개선할 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부 미술관들의 셔틀버스 운영 중단이다. 예를 들어, 독일 작가 팀 아이텔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은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대공원역과 미술관 사이를 잇는 셔틀버스를 중단했다. 현재는 부산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휴관 중인 부산현대미술관도 인근 하단역을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전시 기간 중 중단한 바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애초에 승용차나 택시를 타지 않는 이상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미술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설득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 국립현대미술관은 재개관 이후에도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셔틀버스 중단은 ‘방역 효과’와는 별개로 교통약자나 사회적 취약계층의 공공미술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한다는 본래의 운영 취지와 상충된다.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않고도 미술관에 찾아올 수 있는 관객들은 그런 ‘난관’을 극복할 체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예술 관심도가 높은 젊은이들이거나 여가 시간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다. 폭우나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철,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 미술관행 일반버스를 기다리거나,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경제적 취약계층이 절대다수인 문화예술 소외계층의 공공미술 접근권을 제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전예약제를 통해 미술관 관람 인원을 조정할 수 있는 만큼 셔틀버스 탑승 시에 체온 검사를 하고, 셔틀버스의 증차나 배차 간격 조정을 통해 차량당 탑승 인원을 줄이는 등의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사전예약이나 QR코드 관람등록제도 온라인 예약시스템에 익숙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은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별도의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미술관의 연구·전시·교육 및 사회서비스 또한 제한될 수는 있을 것이나 그 취지 자체가 퇴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예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미술관의 무조건적 ‘사회적 거리 두기’는 기존의 사회적 취약계층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더욱 큰 피해를 입는 ‘사회적 팬데믹’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필주 예문공 대표·문화기획자>

문화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