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파레-살육과 축제가 뒤섞인 핏빛 소동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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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팡파레(Fanfare)

제작연도 2019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8분

장르 스릴러

감독 이돈구

출연 임화영, 박종환, 남연우, 이승원, 박세준

개봉 2020년 7월 9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주)인디스토리

(주)인디스토리

기성감독 기근시대다. 그래서 크고 화려하진 않을지언정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이돈구 감독의 신작 <팡파레>는 반갑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감독이 주변에서 찾았다는 일상의 소재는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하며, 처절하게 담금질되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데뷔작 <가시꽃>은 학창시절 집단 성범죄에 가담했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서도 벗어내지 못하는 죄의식과 가책에 관한 이야기다. 중심 이야기에 더불어 소극적이나마 신앙·계급 등의 다양한 사회적 화두까지도 촘촘히 들어차 있는 이 작품은 투박할지언정 저돌적인 창의가 돋보였다.

2014년 작 <현기증>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향한 탐구와 연민이 한층 응집된 작품이다. 뜻밖의 사고로 인해 한순간 파멸에 이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잔인할 만큼 차갑고 건조하게 진행된다. 표면적으로는 가장인 어머니의 치매가 문제의 시발로 돌출되지만, 실상은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로 소통할 수 없는 소외와 결국엔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고통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잉태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영애씨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작품 속에 녹아든 비극적 살기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비극에 능통한 감독의 장르적 실험

앞선 두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어두운 그늘과 단절된 소통에 관심을 보여왔던 이돈구 감독은 이번 세 번째 작품 <팡파레>에서는 장르영화에 대한 실험을 의도했다고 밝힌다. 많은 부분에서 이전 작품들과 결이 다르지만, 여전히 자신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냈고 과장되고 자극적인 허구를 통해 현실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 또한 변함이 없다.

모종의 거래를 기다리던 제이(임화영 분)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적한 바에 들어선다. 마침 벅적대던 핼러윈 파티를 끝내고 영업을 마치려던 사장은 청소하는 동안 그에게 잠시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얼마 후 의문의 남자 둘이 카페에 들어서고 다른 이들까지 하나둘 모여들면서 조용했던 심야의 카페는 이제 거짓과 피가 넘쳐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해간다.

감독은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팡파레는 축제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악장이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숨 가쁜 상황들이 어찌 보면 전쟁을 치르는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축제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사건이다.”

외진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내던져진 잔인하고 치졸한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하룻밤 동안의 사육제는 돌발적 상황 속에 폭주로 변질된다. 애초부터 모호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는 시시각각 뒤집히고 이들의 대립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사납게 내달린다.

낯설지만 개성 있는 젊은 배우들의 열정

아직 낯설 수도 있지만, 각각의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는 젊은 배우들의 조합도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인데 특별히 이중 두 명은 장편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강태 역을 맡은 남연우는 이돈구 감독과 막역한 사이로 데뷔작인 <가시꽃>에서도 주연을 맡았는데, 최근 조민수 주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초미의 관심사>를 연출하며 감독 출사표를 던졌다.

폭력배 쎈 역을 맡은 이승원은 배우이기 이전에 <소통과 거짓말>(2015), <해피뻐스데이>(2016) 등의 영화를 개봉해 이미 본업인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최근에 문소리 주연으로 완성한 세 번째 작품 <세 자매>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임화영은 홍일점이자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 제이를 연기한다. 감독은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다가 청순하면서도 싸늘함이 공존하는 독특함에 매료되어 캐스팅했다고 밝히고 있다. 발칙한 듯싶으면서도 본심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캐릭터는 존재감만으로도 생경한 매력을 발산한다.

<팡파레>는 작년 개최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이면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독립영화 팬들 사이에 이미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객관적 소격효과가 전하는 주관적 카타르시스

감상자가 갖게 되는 감정이나 정서는 창작물의 평가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극의 경우에도 몰입도가 클수록 관객들은 더 큰 공감과 감동 또는 교훈을 얻게 되는데 비극일수록 효과는 극대화된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정화)’라 명명했다.

(주)싸이더스

(주)싸이더스


반면 20세기의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주장한 ‘소격효과’ 또는 ‘낯설게 하기’는 관객이 극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하나의 창작물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과 정서적 거리를 유지해야만 객관적인 감상 또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소격효과의 가장 효과적으로 방법 중 하나가 ‘관객과 눈 마주치기’다. 무대 위 허구의 세계에 존재하던 인물이 현실의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두 세계의 구분은 무너지고 무대는 철저한 허구로 규정된다. 하지만 이를 역전시켜 도리어 더 큰 감흥을 유도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 현남(배두나 분)은 카메라를 향해 깨진 자동차 백미러로 햇빛을 반사하고 이는 극장 객석을 향해서 뿌려진다. 현남이 마지막에 만끽하는 작은 희망의 여지는 그렇게 관객들에게 실체적 선물이 된다. 이런 소격효과의 역이용은 그의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2003)에서 더욱 극적으로 활용된다. 마지막 관객들을 바라보는 형사 두만(송강호 분)의 강렬한 시선은 관객들을 단순한 관람자가 아닌 주체로 끌어들였을 뿐만 아니라 결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까지 남겼다. 이후 많은 작품이 이 같은 방식을 차용했고, <팡파레>의 결말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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