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3만9000m에서 뛰어내린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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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외행성계 너머로 풍부한 광물자원을 찾아 너도나도 진출하는 가까운 미래, 목성의 위성 유로파나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의 드높은 빙벽에서 다이빙하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모른다. 공기가 거의 없어 우주복을 입더라도 이처럼 ‘미친 점프’를 결행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약한 중력 때문이다. 개미가 지구의 높은(?) 중력에도 불구하고 자기 키의 수백 곱절이 넘는 위에서 뛰어내려도 멀쩡한 이유는 워낙 미미한 체중 덕분이다. 12㎝ 높이의 계단에서 뛰어내리는 개미(5㎜)를 인간(신장 170㎝)으로 바꿔보면 41m, 약 15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꼴이다. 하지만 유로파의 중력가속도(1.314m/s²)가 지구(9.8m/s²)의 약 7.46분의 1배이고, 엔켈라두스의 중력가속도(0.114 m/s²)는 지구의 약 86분의 1배에 불과한 이상 이런 데에서는 인간도 개미처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2012년 10월 지상 39km에서 자유낙하에 도전하는 모습. / 레드불 유튜브 캡처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2012년 10월 지상 39km에서 자유낙하에 도전하는 모습. / 레드불 유튜브 캡처

아직은 SF영화에서나 나오는 상상이라고? 이미 맨몸으로 잠실 롯데월드타워도 아니고 고도 3만8969m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있다면 어떡하겠는가. ‘성층권’이라 들어보셨는지. 영하 3도라 생각보다 춥지 않지만(그러나 낙하하다 보면 기온이 영하 56도까지 곤두박질한다), 산소와 기압이 지상의 1%인데다 오존층보다 높은 곳이다. 낙하산을 펼치려 해도 먼저 대기가 짙은 대류권(지상 1만m 이하)까지 내려와야 하니 그 전에 가속과 압력 그리고 난기류 회전운동에 휘말려 혼절한다면 어찌 될까.

바로 이런 일을 해낸 인물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2012년 10월 14일 3만8969m 상공까지 기구를 타고 올라간 다음 지상관제소와 상의가 끝나자마자 뛰어내렸다. 아무리 프로라 한들 전례 없는 고공점프를 마치 수영장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듯 결행하는 광경에 보는 이의 가슴이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4분 19초의 자유낙하 동안 그가 잠시 혼절하는 통에 지상관제소를 긴장시키는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결국 낙하한 지 10분 만에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 사뿐히 뛰어내렸다. 펠릭스는 최고 속도 1342km/h를 기록하며 아무 기계장비 없이 음속(1224km/h)을 돌파한 세계 최초의 인간이 됐다.

이 역사적 이벤트로 재미 본 이해관계자가 펠릭스만은 아니다. 내압·내열복은 영하 68도~영상 38도 사이에서 견딜 수 있는 특수섬유로 제작됐고, 헬멧은 산소호흡을 할 수 있게 설계됐다. 다이버를 성층권까지 이끌어준 기구는 1.7톤에 불과하나 안에 든 헬륨이 높이 55층 빌딩(약 180m) 만큼 부풀어 오를 수 있게 고안됐다. 훈련과 지상관제소 운영에 들어간 인적·물적 비용까지 모두 다국적 음료회사 레드불이 감당했다. 유튜브로 생중계된 덕에 레드불은 가치를 산정할 수 없는 광고효과를 누렸다.

이 우주다이빙이 우주비행사들이 비상탈출할 때 참고할 만한 경험이라고 섣불리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고속비행 중인 우주선과 둥둥 떠다니는 헬륨기구의 작동원리는 전혀 다른 까닭이다. 지구궤도를 빠르게 질주하는 인공물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복만 입고 뛰쳐나와 대기권에 돌입한다면 그 속도는 무려 음속의 20배에 달한다. 낙하산을 펼칠 새도 없이 숯덩이가 되고 만다(펠릭스의 최대 낙하속도는 음속의 1.25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이빙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인간승리였다. 누가 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공이나 위업은 보통 노력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우주다이빙의 진정한 승자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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