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보다는 심리묘사, 좁혀진 앵글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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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작은 원작보다 여주인공 내면의 심리적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는데, 그러다 보니 편재하는 권력 관계를 조망하는 시야도 좁혀진다.

제목 라비드(Rabid)

제작연도 2019

제작국 캐나다

상영시간 107분

장르 공포, 액션

감독 젠 소스카, 실비아 소스카

출연 로라 밴더부트, 벤 홀링스워스, 테드 아세튼, CM 펑크 외

개봉 2020년 6월 11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수입/배급 라온아이㈜

라온아이㈜

라온아이㈜

정말 그렇다. 제대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특유의 퍽퍽함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내성적인 처녀 로즈의 첫 모습이 딱 그랬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채식주의자였다는 설정이 나온다. 그녀의 직업은 패션 디자이너. 지각한 그녀를 귄터는 갈군다. 귄터가 갑이다. 사진작가 브래드는 로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한껏 꾸며 입고 간 파티장 화장실에서 로즈는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을 엿듣는다. 숙맥인 로즈를 위해서 절친 첼시가 브래드에게 부탁해 억지로 데이트 신청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모멸감에 파티장을 뛰쳐나온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녀의 얼굴 절반과 장기(臟器)의 상당 부분이 훼손됐다.

성형수술 후 달라진 세상

일주일 만에 깨어났지만, 재건 성형수술 비용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던 그녀에게 한 병원이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아직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줄기세포치료의 임상시험을 조건으로 무료로 수술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감쪽같이 돌아왔을 뿐 아니라 영화 첫 장면에 보이던 비건 특유의 거친 얼굴이 아니다.

어느 날, 냉장고를 연 그녀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는다. 큰 사고로 식성까지 바뀌게 된 걸까. 수술의 부작용으로 “현실과 거의 분간되지 않는 악몽을 꾸게 될 수 있다”고 담당 의사는 말했는데, 거의 매일 밤 그녀는 ‘남자사냥’에 나선다. 욕정보다 식욕에 가까운. 이건 그녀의 무의식적 욕망이 반영된 ‘환각’일까.

영화의 원작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품 <열외인간(rabid)>이다. 원작에서 모호하게 처리한 여주인공 안의 ‘괴물’의 실체를 리메이크에서는 줄기세포치료 때문으로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몄다. 원작에서 남자들을 덮치는 괴물은 겨드랑이의 흉터 속에 자리 잡은 알 수 없는 촉수인데, 이 흉터의 모양은 여성 성기의 모양을 닮았다. 말하자면, 중세 이래 전 세계 각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빨 달린 질(vagina dentate)’ 우화의 현대판 버전이다.

그런데 리메이크판에서는 처음으로 당하는 남자는 그녀와 키스를 했고, 입에서 피를 쏟는다. 겨드랑이가 아니라 입안에 있는 건가? 원작에 대한 비평들을 보면 영화에서 퍼지는 괴질―전염력이 높은 변종 광견병(rabid)이다―을 치료법 없는 성병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 여성은 밤마다 피를 빨 남자를 구하기 위해 밍크코트를 걸치고 나가는데, 이건 영락없는 ‘밤거리 여자’를 염두에 둔 묘사다. 거의 비슷한 구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캣 피플>(1982)이지만 “목구멍에 괴물이 있는 건가”라는 설정에서 떠오르는 건 1970년대 만들어진 황당한 포르노 판타지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1972)다. 그런데 조금 더 보고 있으니 이 리메이크판 괴물은 무슨 긴 호스마냥 그녀의 겨드랑이에서도 나온다. 그런데 이 괴물의 모양은 명백히 남성 성기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1983년생 쌍둥이 자매 감독들도 원작에 대해 성적 메타포로 해석하는 시각을 수용한 듯싶다.

팬데믹에 투영한 사회성의 실종

앞서 ‘이빨 달린 질’ 이야기는 보통 전치된 거세공포가 투사된 것으로 설명한다. 밤마다 남자의 피를 욕망하며 거리를 헤매는 로즈의 ‘환각’(이 아니라 진짜다)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갑’인 귄터는 그의 작품을 치켜세운다. 파국의 무대는 팬데믹 국면에서 열리는 프레타 포르테, 패션 로드쇼다. 하이라이트를 차지할, 로즈가 만든 작품을 입은 절친은 전염병 환자에게 손을 물려 감염되어 있었는데, 워킹을 하다말고 귄터에게 달려든다. 권력의 갑을 관계가 전복되는 순간이다. 아쉬운 것은 오리지널 작품이 팬데믹을 통해 묘사하고 있는 사회성이다.

원작에서 백화점에서 아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산타 복장 알바는 폭주하는 경찰이 난사한 총을 맞고 죽는다. 리메이크에서도 이 원작의 산타알바는 인용되지만, 백화점이 아니라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산타클로스 분장남자를 경찰이 쏴 죽이는 식으로 사회적 공간이 축소된다. 원작에서 감염은 주로 다양한 권력의 편재에서 ‘약자’들로부터 시작된다. 부랑자·농부·트럭 운전기사 등. 감염된 노동자들은 감염병 대책을 논하고 있는 시장의 차를 드릴로 공격한다. 권력의 전복 내지는 계급적 복수 메타포를 담고 있다. 리메이크작은 원작보다 여주인공 내면의 심리적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는데, 그러다 보니 편재하는 권력 관계를 조망하는 시야도 좁혀진다. 크로넨버그 감독의 팬이라면 그리 환영할 만한 재해석은 아닐 듯싶다.

주목받았던 원작의 여주인공, 포르노스타 마릴린 체임버스

경향자료

경향자료


원작을 성적 메타포로 해석하는 데는 원작의 여주인공 마릴린 체임버스가 당대의 유명 포르노배우였다는 점도 일조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1972년작 <녹색문 뒤에(behind the green door)>인데, 앞서 인용한 <목구멍 깊숙이>처럼 당대의 고전포르노물이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다. 국내에서 접속경로는 막혀 있지만, 포르노허브와 같은 성인사이트에서 ‘클래식포르노’라는 장르 분류를 달고 전체 분량이 올라와 있다.

유명 포르노배우 출신이라고 하지만 정작 크로넨버그는 체임버스를 캐스팅할 때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들을 한 편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크로넨버그가 주연 여배우로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는 <캐리>(1976)의 시시 스페이식이었는데, 시시 스페이식의 억양 때문에 제작 측에서 그녀의 캐스팅을 거부했다고 한다. <캐리>가 개봉한 것은 영화를 한창 만들 때였는데,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가 빅히트하자, 크로넨버그는 그를 캐스팅하지 못한 걸 상당히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무튼 마릴린 체임버스의 캐스팅은 ‘신의 한수’였다. 영화에서 가슴을 제외한 노출은 없는데도 그녀의 출연은 원작의 입소문과 흥행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유럽이나 남미에서는 아예 마릴린 체임버스 주연 영화임을 포스터 전면에 내걸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극장개봉 없이 <열외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로 출시되었는데(사진), 비디오 표지를 보면 ‘포르노스타 마릴린 체임버스’는 셀링포인트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전혀 강조하지 않았다. 북미권에서 포르노 스타로 데뷔하기 이전 체임버스는 ‘아이보리 비누’ 광고모델로 유명했다. 체임버스는 2009년 세상을 떠났다. 1952년생이니 향년 57세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면 한 팬이 개설한 전성기 그녀의 사진과 영화들을 모아놓은 추모사이트가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주목받았던 원작의 여주인공, 포르노스타 마릴린 체임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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