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종교적 이상과 정치적 갈망, 어느 쪽이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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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독자들에게 늘 고전SF의 최고인기작으로 꼽히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게 짜인 대하소설이다. 총 18권(번역판 기준)이나 되는 방대한 시리즈지만 앞쪽 절반(1~3부)의 테마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가 메시아의 정의에 대한 상반된 평가라면, 다른 하나는 무분별하고 광범위한 테라포밍(인간이 살 수 있게 환경을 바꾸는 ‘행성 개조’)의 폐해를 평가할 절대적 가치 판단 기준이 딱히 없다는 자기모순이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 3> 한국어판 표지 / 황금가지

프랭크 허버트의 <듄 3> 한국어판 표지 / 황금가지

메시아 이슈부터 살펴보자. ‘듄’ 행성 총독 레토 공작에게는 폴이란 아들이 있다. 폴은 은하제국 황제와 결탁한 하코넨 남작의 정권 와해공작으로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사막원주민(프레맨) 무리 속에 숨는다. 프레맨들이 제국 정부의 핍박과 척박한 환경에 시달리면서도 버티게 해준 정신적 지주가 사이비 메시아 신앙임을 간파한 폴은 스스로가 그 화신이 된다. 그는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제국의 새 황제로 즉위한다. 이 과정은 성서시대 이스라엘 열심당원들이 염원한 예수 이미지와 빼닮았다. 시몬 유다의 열심당원들은 예수가 민중 봉기의 구심점이 되어 로마 점령군을 몰아내고 ‘만국의 왕’이 되길 바랐다. 유대인마냥 이 행성 저 행성으로 쫓겨다니다 풀 한 포기 없는 ‘듄’까지 밀려난 프레맨들 또한 열심당과 똑같은 구세주를 갈망한다. 성서와 다른 점은 폴이 예수와 달리 이들의 염원을 들어준다는 데 있다. 새 황제의 광신적 홍위병이 된 프레맨들은 권력지형의 변화가 낳은 공백을 빠르게 메우며 신권력층으로 올라선다.

얼핏 <듄>의 메시아는 미국적 실용주의 버전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폴 또한 열심당원들을 실망시킨 예수처럼 프레맨들을 혼란에 빠뜨리니까. 정적들의 테러로 눈을 잃은 폴은 프레맨 관습에 따라 사막에 버려지게 되자 선뜻 황위를 내놓고 홀연히 사막으로 사라진다. 얼마 후 폴은 죽기는커녕 떠돌이 시각장애인 차림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변신해 기존 정부에 대한 독설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만국의 왕 폴의 추종자들이 부와 권력으로 타락했지만, 설교자 폴의 말에 귀 기울인 자들은 사회모순을 깨달을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섭정을 맡은 폴의 여동생은 이 정체불명의 설교자를 정부 권력에 도전한 불순분자라 보고 죽이려 든다. 결국 <듄>은 <신약성서>가 추구한 종교적 이상과 당대 이스라엘인들의 정치적 갈망을 둘 다 실현해놓고 어느 쪽이 나은지 묻는다. 진정한 메시아란 어떤 존재인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으되 부패해버리는 만국의 왕인가, 아니면 이런 허상을 꿰뚫어 보고 내적 성찰로 올바른 인간이 되라는 영혼의 안내자인가.

테라포밍 역시 이율배반적이다. 사막투성이 행성에서 추진되는 대대적인 녹지조성사업에 모래벌레들이 멸종되어 간다. 프레맨들을 위해서는 녹지사업이 절실하나 물은 모래벌레에게 치명적인 독이라서다. 문제는 이것들이 ‘듄’의 절대적 수입원인 스파이스(우주선 항법사들이 컴퓨터 없이도 정밀 항로계산을 하게 해주는 향정신성물질)를 생산하는 원천이며 스파이스 없이는 성간우주여행이 불가능하니 우주 무역과 은하제국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불모의 행성을 녹음으로 뒤덮는 것이 온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판단을 한층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애초 초목이 우거졌던 이 행성을 사막으로 바꿔놓은 장본인이 바로 모래벌레들이란 사실이다. 역사적 연원을 따지면 모래벌레들이야말로 외부에서 유입된 이물질이다. 이 경우 테라포밍의 윤리학은 누구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더구나 모래벌레를 이 행성에 데려온 장본인이 인간인 만큼 그 누구도 환경개조가 초래한 재앙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듄>의 미덕은 세상만사 어느 한 시선으로만 볼 수 없음을 깨우쳐주는 데 있다. SF에서 사회와 종교, 과학의 변증법적 충돌을 그릴 수 있을까? <듄>이 바로 해답이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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