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관객의 손안에 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연극의 4요소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연극 공연에 있어 관객이란 존재는 어마어마한 무게와 의미를 지닌다. 관객은 공연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이자 공연의 최종적 의미를 완성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로 오면서 연극의 관객은 작가나 연출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의 의미망을 완성하는 주체적 존재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최근 ‘이머시브 시어터’나 ‘관객 참여형 연극’ 등 관객의 참여와 적극적 개입을 유도하는 공연들이 활발히 제작되고 있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객이 주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쉬어 매드니스>는 상당히 일찍부터 관객의 참여를 주도해온 흥미로운 연극이다.

콘텐츠플래닝 제공

콘텐츠플래닝 제공

파울 포트너가 쓴 <쉬어 매드니스>는 1980년 초연 이후 미국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엄청난 장기공연 기록을 가진 작품으로 지금도 전 세계 22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학로를 대표하는 오픈런 공연으로 자리 잡으며 많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와 배우들의 열연 등 작품의 인기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무엇보다 관객의 추리에 따라 매번 다른 결말로 끝을 맺는 독특한 형식이 가장 큰 매력이다.

늘 떠들썩한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 위층에서 어느 날 유명 피아니스트가 살해되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손님으로 가장해 숨어 있던 형사들이 미용실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쉬어 매드니스 미용실 원장과 골동품 판매상, 미용사와 이곳의 단골손님인 우아한 사모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이들 4명은 각자 치밀한 알리바이를 주장하면서 자신을 변호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누가 범인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관객들은 사건의 목격자이자 배심원이 되어 용의자들을 심문하고, 그들의 알리바이를 토대로 나름의 추리를 하며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작품은 관객이 추리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여러 방식으로 만들어놓았다. 예를 들면 쉬는 시간에 형사 역을 맡은 배우가 공연장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관객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거나, 극 중 질문 타임을 두어 관객들이 직접 용의자들에게 의심쩍은 부분을 물어보게 하는 식이다.

최종적인 범인 확정은 관객의 설문조사를 통해 이뤄진다. 매회 관객이 다르다 보니 관객들의 추리와 결론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쉬어 매드니스>는 바로 이 점에 착안, 범인이 각기 다른 4개의 결말을 만들어놓고 그날그날 관객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결말로 극을 이끌어간다. 매회 달라지는 범인에 따라 극 중 살인사건에 담긴 의미가 각기 다른 사연 속에서 펼쳐지므로 다른 용의자가 범인으로 확정되는 공연을 보고 싶어 다시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도 있다. 추리와 선택을 통해 관객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품의 결말은 적극적인 창조자로서의 관객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김주연 연극평론가>

문화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