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김언경 “언론도 ‘내로남불’이 가장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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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더니, 요즘에는 ‘기-승-전-언론’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이는 지극히 정파적이고, 기득권 옹호적이고, 냉전·분단 지향적 언론이 모든 문제의 결론이라는 지적이다. 참 통렬한 지적이고, 뼈아픈 언론 비판이다. 5월 20일은 ‘기자의 날’이다. 이날은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군부의 언론검열에 맞서 제작 거부에 돌입했던 날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김언경 “언론도 ‘내로남불’이 가장 큰 문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언론을 가장 매섭게 비판하는 시민단체다. 민언련은 1984년 해직 기자와 진보적 출판인이 ‘민주·민족·민중 언론을 향한 디딤돌’을 표방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시작됐다. 1986년 기관지 <말>은 ‘보도지침’이라는 군사정권의 언론통제와 이에 굴종하는 기성 언론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유명해졌다. 90년대 이후 미디어비평·교육·선거보도 감시운동 등을 통해 시민단체로 거듭났다. 민언련은 ‘미디어 탈곡기’라는 이름으로 매일 언론을 탈탈 털며 감시·비평하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민언련 탄생 36년 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와 김언경 대표(52)가 임기 2년 공동대표에 선임된 것이다. 보통 민언련 대표는 언론인 출신이나 현직 언론학자들이 비상임으로 맡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에 순수 시민운동가 출신 상근대표가 탄생했다. 이는 그동안 언론 감시·비평이 ‘동업자 출신 대표’의 눈이 아닌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그는 지상파에서 날카로운 언론비평 단골 출연자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를 5월 11일 서울 마포 민언련 사무실에서 만났다.

시민운동가 출신이 상근대표 맡아

-민언련에서 언론 활동가 출신 첫 상근대표다. 소감은 어떤가.

“사실 걱정이 많다. 그동안 민언련 대표는 겸직이자 명예직으로 월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최민희 전 국회의원이 상근자였지만 잠깐 있었고, 내가 정식 월급을 받는 사실상 첫 상근대표다. 월급을 축내지 않는 상근대표가 돼야 하는데 그것이 고민이다. 언론개혁 요구가 높아지고 할 일은 많은데 사람 손은 달린다. 상근자가 13명인데 일당백을 해도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회원을 1만 명 정도로 늘리는 작업부터 하려 한다. 내가 회원 배가의 아이콘 아닌가.(웃음)”

-지난 3월 대표가 되자마자 맡은 사업이 창간 100년을 맞는 조선·동아에 대한 비평운동이었다. 언론노조·자유언론실천재단 등 많은 단체가 같이했지만, 민언련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것 같다.

“조선·동아 100년을 ‘곱게 보낼 수 없다’는 취지였지만, 우리는 ‘손발 부문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조선 동아 100년>이라는 방대한 책을 만들었지만, 디지털화가 안 돼 있었다. 우리가 국회도서관에서 당시 보도를 모두 확인해 <조선 동아 100년 거짓보도 100년>이라는 이름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우리는 비교적 젊은 회원들이 많아 퍼포먼스 등 활동도 재미있게 하려 했다.”

-요즘 정치·경제·통일 등 모든 문제는 결국 언론개혁으로 귀결된다는 ‘기-승-전-언론개혁’이라는 말이 많다. 요즘 언론, 뭐가 문제인가.

“너무 많아서(웃음)… 한 마디로 ‘내로남불’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언론은 오로지 자신의 정파적 입장에서 재단하려 든다. 권력이 비판·견제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기준이 없다. 최근 정대협 보도도 할머니의 실제 주장과 보수언론의 보도는 결이 다르다. 일부만 과장해 보도하고 있다. 그런 과장·왜곡 보도에 지친 국민이 화가 나 ‘기-승-전-언론개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개혁·진보언론도 문제가 많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으로부터 독립이 가장 현안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지금 모든 언론사가 생존 문제에 걸려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종편에 유튜브까지 가세하면서 광고시장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언론은 언론사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찌라시’ 제조사로 남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진정한 언론이 되려면 자본과 선을 그어야 한다. 이게 기성 언론사에 무리라는 점을 알지만,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 지원 ‘아직 아니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문제 언론은 보수언론, 특히 그 회사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이다. 종편은 정부가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온적이다. 심지어 불법 설립 사실이 드러난 종편도 허가를 취소시키지 못했다. 정부도 언론개혁에 관심이 없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이에 김 대표는 “민언련도 방통위를 비판하는 성명도 많이 냈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인지 어설프게 건드릴 바에는 방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는 모두 형식상 주식회사다. 합법적 범위에서 영업해 생존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은 공공재라는 측면에서 좀 다르다. 공영방송도 심각한 경영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미 종편에 준 중간광고 특혜도 프리미엄광고라는 이름으로 공영방송에 주고 있다. 그런데도 신임 MBC 사장은 ‘KBS처럼 수신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공영방송 지원에 적극적이지만 ‘아직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지금 MBC가 국민에게 수신료를 달라면 ‘차라리 없애 버려라’라고 할 수 있다”면서 “채용 성차별과 방만한 경영, 비정규직과 고충 분담은 안 하면서 수신료를 달라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3월 20일 민언련 정기총회에서 새로 선임된 김언경·김서중 공동대표와 신미희 사무총장(오른쪽부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민언련

3월 20일 민언련 정기총회에서 새로 선임된 김언경·김서중 공동대표와 신미희 사무총장(오른쪽부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민언련

요즘 ‘레거시 미디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언론을 그리 부르는데 여기에 언론학자가 가세해 ‘레거시 미디어는 정통이고 품위가 있으니 보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물론 일부 국가는 정부가 신문사를 지원하고, 우리도 신문배달을 정부가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의 본질은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진실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다. 값싼 신문용지와 저임금 배달원에 의존한 미디어는 무한정 정보를 쌍방향 소통하며 동영상으로 전달하는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유튜브·넷플릭스 등 신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전자·통신의 발전은 앞으로 또 다른 전달 매체를 만들어낼 것이다. 결국 언론은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지 전달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언론운동은 수단이 본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언론개혁은 지금껏 권력과 자본으로 독립 관점에서 주로 봤다. 물론 그 문제는 여전하지만 최근 가짜뉴스 재생산, 특히 채널A 기자나 KBS의 김경록 PB 인터뷰 논란 등은 기자 개인의 자질과 역량 문제로 보인다.

“요즘 <경향신문>에도 그리 지적받는 기자가 있다.(웃음) 기자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직업이다. 청와대 고위층이든, 검찰총장이든 취재원의 진실과 의도를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특히 검찰 출입기자는 취재원에 지나치게 밀착되고, 기자 자신이 권력화됐다. ‘고위층 누구와 친하다’는 것이 자랑이고, 회사는 그것을 기자의 능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현장에서 보면 기자는 문제의식과 진실규명에 대한 열정 부족하고, 현실(연봉·특권)에 안주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는 것 같다. 특히 간부 기자는 ‘이 사안이 기사가 되느냐, 된다면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하는가’를 빠르게 판단하고 지시해야 하는데 그 판단 준거가 미약한 것 같다. 그 준거는 국민의 기본권인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성소수자 문제나 외국인 근로자 문제에서 엉뚱한 기사가 나온다. 기자에게 헌법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맞다.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 위원장은 국민의 인권의식을 높이려면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며 했고, 2011년에는 인권보도준칙이 제정됐다. 나도 이 작업초기 2년여 동안 참여하면서 기본권과 언론이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인권을 아는 사람은 언론을 모르고, 언론학자는 인권을 몰라 애를 먹었다. 민언련 활동가로 언론운동도 인권관점에서 너무 부족했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언론 수용자, 즉 독자의 문제도 심각하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 보듯이 세상은 ‘자기들끼리’ 성격으로 변모했다. 뉴스도 자기들 기호에 맞는 것만 선택하고, 그러다 보니 가짜뉴스를 믿는 ‘확증편향’ 문제도 심각하다. 민언련에서 바람직한 독자의 자세에 대한 교육 혹은 운동도 필요하지 않을까.

“확증편향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보수진영은 유튜브로, 진보진영은 팟캐스트로 양분됐다. ‘기자가 이것이 기사가 되느냐, 어떻게 되느냐’는 기준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국민(독자)도 ‘진실인가’를 판별하려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나 사회에서 미디어 비평 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매체비평은 진보 신문조차 하지 않고 방송은 최근 몇 개 생긴 수준이다.”

“독자도 ‘진실’ 판별하는 눈을 가져야”

김 대표는 1968년 경기 파주 출신이다. 1986년 경기대 문헌정보학과에 입학,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다녔다. 1992년 민언련이 시민교육을 위해 만든 언론인학교를 통해 언론에 입문, 자원봉사로 언론모니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컴퓨터도 부족해 서로 돌려쓰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언론모니터를 했다”고 말했다. 이 자원봉사는 1995년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민가협)에서 양심수 지원사업을 했다. 이때 만난 남규선 민가협 총무가 국가인권위에 가면서 같이 인권보도준칙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김 대표는 2006년 민언련 모니터부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시 언론모니터는 물론, 선거보도 감시연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언론단체 단식농성(2014년) 등의 민언련 활동 실무에 그가 있었다. 민언련은 꼭 언론 감시·비평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시민언론상, 성유보특별상, 올해(이달)의 좋은 보도상, 좋은 드라마상 등 언론을 격려하는 사업도 많다.

김 대표는 최근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민언련 회원을 대폭 늘리는 ‘수훈’을 세웠다. 아마 그가 이번에 대표로 발탁된 결정적 요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 대표와 김어준씨는 매우 가깝다. 요즘 가장 대표적인 가짜뉴스는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낙선)이 주장하는 21대 총선 부정투표 주장이다. 김어준씨는 팟캐스트에서 18대 대선에서 심각한 개표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는 2017년 <더 플랜>이라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기자가 ‘민 의원의 총선부정 보도 검증처럼, 김어준씨의 대선부정 주장도 미디어 탈곡기에 넣어 탈탈 털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거부정을 검증할 능력은 안 되고… 우리에게 ‘왜 김어준씨 방송을 모니터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음을 안다. 우리는 신문·TV 모니터에 이어 최근 종편·유튜브로 확대했다. 김어준씨 팟캐스트와 tbs FM 뉴스공장 등 팟캐스트와 라디오까지 모니터하지 못한다. 영화는 더욱 우리 모니터 대상이 아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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