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육 혁명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능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번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보면서 사회학도로서 혀를 내두르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브리핑 중에 “정말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바이러스라는 적들이 어찌나 교묘한지 우리 사회의 빈틈·허점·맹점의 맥을 딱딱 짚어 헤집고 들어오는 양상을 보인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이준헌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이준헌 기자

이번 바이러스는 이간계를 쓴다. 사태의 본질은 바이러스인데 감염된 인간과 특정 성향, 집단, 국가를 혐오하도록 부추긴다. 인간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커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보이는 상대, 즉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겨난다. 또한 경제, 종교, 유흥 심지어 교육 영역까지 파고 들어와 약점을 움켜쥐고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고 있다. 다수가 집단적으로 밀접 접촉하면 감염 확률·위험이 커지니 섣불리 개학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수능을 두 주 미뤄 12월 3일로 못 박아 놓고, 학사일정을 역산해야 하는 수험생·학부모·교사와 학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를 맞고 있다. 교육 당국은 5월 중 등교할 수 있으면 수능 일정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뒤로 몰린 모의고사·평가시험을 꾸역꾸역 소화해 가면서 6월에 중간고사, 7월에 기말고사를 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수시는 9월에 접수가 시작된다. 2020년 1학기, 고3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고, 선생님을 몇 번이나 만났을까? 선생님은 학생들에 관해 무엇을 알까?

지금 같은 상황이면 일부에서 외국 여타 나라들과 맞추자고 주장하는 9월 학기제 전면시행과 뭐 그리 다른 그림이겠나 싶다. 인간의 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코로나19는 단기에 종식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 기회에 아예 입시 시스템을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학가의 등록금 반환 투쟁보다 올 수능에서 재학생과 재수생 수험생 간 격차와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이는데 그 해법은 고민해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여지없이 공격해 겨우 막아놓은 외벽을 할퀴어 뜯어내고, 취약한 골조를 드러낸다. K방역이 물리적 거리 두기로 성과를 내는 듯할 때 지하세계에서는 클럽파티가 한창이었고, 조용한 전파자가 곳곳을 활보했다. 무엇보다 양극화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계층에 따라 경제적 고통은 다르다. IMF 때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 문명과 사회체제에서 드러난 취약점은 역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개혁과제가 된다. 벽지만 발라 막아서는 안 되고, 새 벽돌로 튼튼하게 개·보수를 해야 적들의 공성전에서 버텨낼 수 있다. 그래서 말인데 교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입시를 올해 없애버리면 어떨까? 올해 이후로 ‘비포(before) 코로나’ 시대의 집체적 경쟁을 없애버리면 어떨까? 올해만이 아니라 앞으로 아예 모두.

자연으로부터는 안전에 위협을 받고, 인간이 만든 기계와 경쟁에서는 논리연산도 더 잘하기 힘들어진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감성, 행복, 가치, 상상, 엉뚱한 창의만 하도록 해보는 실험은 어떨까? 자기 일 아니라고 멋대로 장난치지 말라고? 난 진지하다. 난 고3 아빠다.

<최영일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시사평론가>

IT칼럼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