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프랑스 언론 <레제코(Les Echos)>에 조세전문 변호사 비르지니 프라델가 코로라19 사태와 관련해 쓴 글이 화제가 됐다. 기고문의 서두에서 프랑스의 마스크 부족 및 프랑스가 처한 여러 어려움을 나열한 후, 대만 및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코로나에 잘 대응했다는 사실을 잠시 소개한 다음 본론으로 들어간다.
기고문의 핵심은 ‘과잉 감시문화’에 대한 것이다. 기고문은 중국이 지난 수년 동안 디지털 감시와 시민에 대한 끔찍한 억압을 시행해왔다는 사실을 얘기하더니, 곧바로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중국과 한국을 동일시하는데 사용한 증거는 파파라치 제도다. 글쓴이는 수많은 한국인이 다른 시민을 신고하기 위해 신고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면서 끔찍한 문화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파파라치 제도는 오래전부터 외신에 몇 번 소개된 적이 있다. 이를 다룬 미국의 최대 국제방송국 VOA는 시민이 자율적으로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문화가 중요한데, 한국의 파파라치 제도는 건전한 시민정신 발휘를 막고 믿음과 신뢰 대신 감시와 적발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파파라치 제도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시스템과 파파라치 제도를 연관시키는 건 꽤나 비논리적이다. <레제코>에 실린 기고문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할 이유가 없으며 시민사회가 전체주의적 미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프랑스는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위치 추적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도시기능의 마비까지 가져오는 심각한 재난 상황이다.
물론 스마트폰 위치 추적을 하지 않고서도 효과적인 방역이 가능하다면 그런 방법을 택하면 된다. 하지만 프랑스가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4월 28일 오전 9시 기준, 프랑스는 12만8339명의 확진자, 2만293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사망률은 18.1%로 세계 1위다(한국의 사망률은 2.3%).
이미 미국·영국·이스라엘·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스마트폰 위치 추적을 허용했거나 준비 중이다. 애플·구글도 아예 스마트폰 운영체제에 확진자 접촉 여부를 감지하는 기능을 탑재하기로 했다. 서구 국가들이 그동안 프라이버시 보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왔는가를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문명의 붕괴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처럼 자가격리자 감시 명목으로 집안에까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거나, 거리 곳곳에 설치된 CCTV와 인공지능 기술로 개인을 식별하고 모든 행동을 기록한 후 점수를 매겨 차별하고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는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인류는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보호나 극단적인 시민 감시시스템이 아닌 양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합리적인 값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코로나19가 인류에게 던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됐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