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50주기행사위 실행위원장 한석호 “전태일 정신은 풀빵(나눔)이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올해는 서울 평화시장 열악한 환경에서 재단사로 일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의 50주기다. 100년에 가까운 우리 노동조합 역사에서 전태일 분신은 전환기적 사건이다. 지난 5월 7일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전태일50주기행사위)’가 출범했다. 근 8개월간 많은 행사를 기획·집행할 사령탑이다. 이 실행위 한석호 위원장(56)은 스스로 ‘왼쪽 심장에는 전태일, 오른쪽에는 5·18을 품고 산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전태일 추종자다.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세월호 4·16연대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5월 4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전태일재단에서 그를 만났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전태일50주기행사위 실행위원장 한석호 “전태일 정신은 풀빵(나눔)이다”

‘왼쪽 심장에는 전태일, 오른쪽에는 5·18’

-5월 7일 출범한 위원회에는 16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 어떤 인물과 단체가 같이하는가.

“그동안 연대사업을 하던 노동·시민사회가 거의 모두 참여하고 있다. 민주·한국노총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 한국진보연대·전농 등 사회단체, 참여연대·경실련·환경운동연합·YMCA 등 시민단체가 대부분 참여한다. 지금도 지방 시민·사회단체가 속속 참여를 알려오고 있다. 단체뿐 아니라 개인의 참여도 환영한다.”

-전태일 50주기에 어떤 행사가 이뤄지나.

“캐치프레이즈는 ‘(2020)연대의 50년 평등의 100년’이다. 다양한 학술·시민참여·문화사업이 열린다. 이미 10개 출판사가 각각 한 권의 책을 기획하는 행사를 시작했다. 5월 14일부터 7월까지 청년·노동·문학·여성 등 각 분야에서 전태일의 현재적 의미를 놓고 토론이 열린다.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평전> 한 구절을 읽고 ‘코로나19 사회연대기금’을 내는 퍼포먼스와 동판 설치 사업도 진행한다. 이미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는 내년 초 극장 상영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개인이 참여하는 시민참여위원회를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태일 정신을 확산하는 작업도 이어진다. 10월 17일부터 11월 13일 두 노총의 노동자대회, 11월 9일 ‘노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포럼도 계획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스스로 ‘전태일은 내 왼쪽 심장’이라고 했다. ‘전태일 정신’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뭔가.

“전태일 하면 분신만 생각하는데, 1980년대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50주기를 맞아 말하려는 시대정신은 세 가지다. 첫 번째가 실천과 조직 정신이다. 전태일은 바보회·삼동회를 만들어 대자보를 만들고 청원도 하다 언론에 보도하게 하고, 집회하다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두 번째가 전태일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로 바로 ‘풀빵 정신’이다. 점심을 못 먹는 어린 ‘시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12㎞를 걸어서 퇴근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와 극심한 불평등 사회에서 사회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울 것이다. 세 번째는 모범 기업 정신이다. 전태일은 마지막으로 ‘태일피복’이라는 직원이 인간답게 일하며 수익을 내는 이상적 기업을 만들려 했다. 바로 이것이 전태일의 3대 정신이고, 이번 행사는 모두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 제작이나 전태일거리 조성, 문화·학술·출판 사업 등 너무 축제성 행사 위주다. 전태일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밀폐된 봉제공장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다 폐병으로 죽었지만 지금은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끼어 죽는다. 최근 이천 물류창고 공사 중 죽은 38명도 대부분 하청 노동자다.

“그렇다. 우리는 단순히 전태일 50주기에 전태일을 불러내 우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모든 행사에 ‘코로나19 위기극복 사회연대운동’을 녹이고 있다. 노동·시민단체는 물론 국민 각자가 코로나19 사회연대기금을 모아 지금 구조조정 위기에 몰린 ‘밑으로’ 향하자는 것이 캠페인의 핵심이다. 연중 ‘5·5·5운동’, 즉 전태일 50주기, 5인 미만 사업장 500만 노동자, 5대 권리운동도 추진한다. 우리 실행위는 노조의 투쟁과 실천을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한 위원장은 “전태일은 자신의 노동조건을 올려 달라며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인 미싱사와 시다 임금을 올려 달라고 싸우다 죽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이 행사를 통해 현재 노동운동이 실천하지 못하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민주노총 내에서 좀 ‘이단아적’ 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민주노총 조합원 절반 정도는 연 소득 7000만원 이상으로 노동자 상위 10% 안에 든다”면서 “외환위기 이전에는 현대자동차가 임금을 인상하면 다른 부분도 임금이 따라 올랐지만 지금은 비정규직 임금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운동연구소 2017년 분석에 따르면 국민총소득(GNI)을 기업 이윤 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배분했을 때 1인당 소득은 5200만원이다. 그는 “1억 이상 받는 노동자들이 그대로 있는 한 절대 5200만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위 1억원 이상 노동자는 더 이상 임금을 올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학 때 <전태일 평전> 읽고 운동권으로

물론 이는 외환위기를 겪은 기업이 평생직장 개념을 없애고 비정규직을 양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조조직률이 10%밖에 안 되는 우리 현실에서 이런 주장은 ‘귀족노조’라는 일반의 비난에 빌미를 준 것도 사실이다. 노조조직률 60~70%인 북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우리 양대노총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임금인상이 지상과제인 현 노동조합에는 일종의 ‘이단’이었고, 결국 그는 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사과했다.

한 위원장은 1964년 경북 예천 출신이다. 부친은 자식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용산 해방촌 달동네에서 성장했다. 그는 농대를 나와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생각했지만 부친은 아들이 고위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다. 부친의 완곡한 요구에 그는 1983년 등록금이 싼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1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운동권이 됐다.

이후 그는 ‘왼쪽 심장에 전태일, 오른쪽에 5·18’이라는 신념으로 살았다고 했다. 1987년 6월항쟁에서 명동성당을 지키다 구속돼 4개월여 동안 복역하고 나오자마자 인천 노동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노조에서도 줄곧 사수대·선봉대로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투쟁의 최일선에 있었다. 군대도 가지 않았지만 전국 노조를 돌며 노조원에게 각목 전투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단순하고 무식하고 과격한 ‘단무지과’라 불렀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1999년 금속연맹 주 5일 투쟁, 2001년 대우자동차 시위로 또 구속됐다. 숱한 구사대와 전투경찰과 싸움, 세 번의 투옥을 겪으면서 35년을 이어온 그는 요즘 스스로 ‘실패한 노동운동가’라고 자탄한다. 그것은 더욱 심각해지는 노동자의 양극화 때문이다.

5월 7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50주기 실행위가 출범하고 있다.

5월 7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 50주기 실행위가 출범하고 있다.

-그렇다고 실패한 노동운동가로 자책할 것까지 있나.

“아니다. 나는 실패했다. 노동운동의 본령은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인데 노동자 불평등이 더 심화됐다. 정부 잘못도 있고 지식인·언론 잘못도 있지만 노동운동도 잘못이 있다. 말로만 ‘연대와 투쟁’을 외치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기 것을 챙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더라.”

-노동·진보는 만날 동태찌개만 먹어야 하나, 가끔 등심도 먹어야 하지 않나. 욕망이 있는 인간에게 정당하게 벌어서 쓰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누구를 일제 렉서스 승용차 탄다고 비난하는데 러시아혁명을 끝낸 레닌도 영국에서 최고급 승용차 롤스로이스를 수입해 탔다.

“열심히 일해서 난 소득 격차라면 뭐라 하겠나. 그러나 편법이나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늘린 사람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크다. 특히 같은 방송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같은 배를 만들면서, 같은 학교에서 일하면서 노동자의 양극화가 이렇게 커선 안 된다.”

-조국 사태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조국 사태가 그런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하나.

“맞다. 조국 사태가 상징적이다. 조국을 보면서 ‘자녀 학력을 연줄과 돈으로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국만 욕할 수 없다. 조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노조·시민사회에도 부지기수다. 더 화가 난 것은 진보라는 이름의 지식인·학자·정치인·언론인, 심지어 노동·시민·사회에서도 ‘그게 무슨 잘못인가’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거기서 더 절망했다.”

이번 조국 사태를 통해 심각한 진보의 분열이 노정됐다. 이른바 ‘박근혜 타도’를 외친 광화문 촛불과 ‘조국 수호’를 외친 서초동 촛불의 차이다. 한 위원장은 2017년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레디앙)라는 책을 펴냈다. 노모를 모신 가난한 노동운동가가 고교생 딸과 대학 ‘입시산’에 오른 이야기다. 책에는 ‘목숨보다 소중한 딸’ 학원비 23만원이 없어 주변에 ‘동냥과외’시키며 유명 여대에 합격시킨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기자가 ‘조국의 딸과 자신의 딸이 너무 대비돼 분노하는 것인가’라고 ‘아픈 질문’을 했다. 이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런 거다”라고 인정했다. 사실 입과 글로 개혁·진보를 외친다고 실생활에서 가난하게, 혹 노동자 평균 임금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알면 행해야 한다는 지행합일이라는 동양문화에 너무 매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당하게 부를 축적해 쓴다면 뭐라 할 것인가.

최근 여당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양정숙 당선자의 석연치 않은 재산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결국 ‘꼬리 자르기식’으로 제명·고발했지만 비단 이 사람뿐일까. 경실련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 37%가 다주택자였다. 특히 경제정책을 책임진 김수현 전 정책실장 소유 부동산은 최근 1~2년 사이 12억원, 장하성 전 실장도 10억원, 현 김상조 정책실장도 5억원 이상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빈부 양극화의 가장 핵심인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느냐는 경실련의 비판은 공감이 간다.

‘달의 뒤편에서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

한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온 진보신당 사무총장 경험이 있다. 그의 정치활동도 노동운동의 연장선이었다. 그가 천착했던 진보 정치세력 정의당·민중당·노동당은 패배했고, 심지어 민주당과 위성정당 연합에도 외면당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그는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은 정의당의 ‘시각점’은 여의도에 갇혀 있었고, 민중당과 노동당은 여전히 운동에만 갇혀 있었다”며 “대중의 바다, 밑바닥으로 가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진보정치 재편에 대해 “여의도 권력을 위한 통합,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면 통합진보당처럼 또 깨진다”고 말했다. 기자가 ‘통합진보당 분당은 진실의 문제 아닌가’라는 질문에 “두 노선을 경험한 바 권력과 욕망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밑바닥’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그를 “군더더기 없는 진정성으로 살아가는 노동운동가”라고, 이광호 출판사 레디앙 대표는 “달의 뒤편에서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라 평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낮은 곳’으로 ‘풀빵정신’을 강조했던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신생 기본소득당이 원내에 진출했다. 물론 여당 민주당과 비례연정을 통해 이뤄진 정치지형이다. 기본소득당은 노동이 필요 없는 사회를 상정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실행된 재난지원금은 사실상 기본소득으로, 이제 기본소득은 낯선 정책도 아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대부분 노동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250년 전 마르크스 이래 노동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존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도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기자의 문제 제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학자는 다양하게 노동의 미래를 예측한다. 나는 미래에 플랫폼 노동자가 한 축이라면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면서 노동의 특권화가 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상층 노동자와 최저임금이나 기본소득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하층 노동자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사회연대 전략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전태일 정신이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원희복의 인물탐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