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ON)-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처절한 보복 살인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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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 누구나 원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에서는 요원한 말이다. 현실과 픽션은 애초에 다른 탓인지 정의는 늘 가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니까. 강력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미온적인 판결만 해도 오히려 ‘사형(私刑)’이 진짜 정의는 아닐까 싶어 쓴맛을 삼키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까 말이다. 나이토 료의 데뷔작 <온(ON)>은 그런 독자의 바람을 잔혹한 복수로 구상화하고, 여기에 뇌와 마음이라는 복잡한 장치가 어떻게 ‘구동’하는지를 덧댄,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소설이다.

나이토 료의 <온> 한국어판 표지 / 에이치

나이토 료의 <온> 한국어판 표지 / 에이치

제21회 호러소설대상 독자상 수상작이란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악을 응징하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은 지극히 자극적이고 끔찍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우선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는 범죄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성폭행을 일삼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용의자는 자신이 피해자를 죽인 방식과 같은 최후를 맞이한다. 심지어 그의 죽음은 늘 피해자를 스마트폰으로 촬영·송신해 협박한 그대로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수감 중인 사형수 역시 자신이 행한 폭력과 꼭 닮은 방법으로 감방에서 죽음을 맞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충분히 이루어졌다. 기묘한 것은 그다음이다. 이들의 사인은 황당하게도 모두 ‘자살’이기 때문이다.

성폭행범의 스마트폰에 담긴 영상을 보건대 다소 의아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의 사인은 명백한 자살이다. 사형수 또한 스스로 머리를 감방 벽에 강하게 찧은 후 죽기 직전까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수차례 내려치는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그를 지켜본 간수의 말마따나 정말로 “저놈에게 죽은 망령이 순서대로 복수하러 온 것” 같은 모양새다. 물론 이 작품은 우리의 부조리한 현실을 대리만족하려는 욕망에서 시작하긴 하나, 절대로 심령소설은 아니다. 최면술·뇌 조건반사 등 시종 과학적 가능성을 토대로 검토하고 소거하며 차츰 진실에 접근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스위치를 켜는 자’라고 명명한 이에 의해 범죄자들의 자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마침내 처절한 보복 살인의 진상은 상처 입은 인간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작품의 주인공인 신참 형사 도도 히나코는 지난 10년간 도쿄에서 벌어진 미해결 사건 파일과 성범죄 용의자 리스트를 완벽히 암기한 가공할 기억력을 토대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 사건을 한데 꿰는 주역으로 활약한다. 그는 늘 고추양념통을 가지고 다니며 코코아에 타 먹을 뿐 아니라 메모는 거의 그림으로 요약하는 괴짜 중의 괴짜다. 하지만 히나코를 기꺼이 응원할 만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기인적인 풍모보다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라는 계량화하기 힘든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태도로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데 있다. 막 형사가 된 그는 심하게 훼손된 시체 앞에서 구역질하고 동료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평범한 인간이면서, 성범죄만큼은 동성인 자신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에 누구보다 도움이 되고픈 사명감에 온몸을 내맡긴 형사다. 마침내 히나코는 정신과 의사 다모쓰의 조언을 받아 치료 중인 환자들의 참혹한 기억과 퇴행최면, 뇌과학 등의 정보를 기반으로 불가사의한 사건을 지울 수 없는 유년의, 범죄의 상처로 풀이해낸다.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시리즈는 일본에선 스핀오프작을 포함해 13권의 단행본이 출간되고 TV 드라마로도 제작되는 등 계속해서 끔찍한 현실 범죄와 히나코의 성장을 엮어가는 중이다. 인과응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온한 결말로 인간의 마음을 파헤친 <온> 이후 국내에서도 형사 히나코의 성장을 좀 더 지켜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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