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모모 대표 문아영 “70년 지속된 한국전쟁 끝내자”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20년은 유독 기억해야 할 것이 많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고, 4·19혁명 60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6·15 첫 남북정상회담 20주년이다. 계획됐던 굵직한 행사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축소’ 혹은 ‘생략’됐다. 그나마 코로나19가 뜸해질 6월에 열릴 한국전쟁 70주년 행사를 기대할 정도다. 이번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매우 야무진 운동이 기획되고 있다.

[원희복의 인물탐구]피스모모 대표 문아영 “70년 지속된 한국전쟁 끝내자”

코로나19 극복에 세계적 모범을 보이고, 세계 11위 무역대국인 대한민국이 전쟁 중인 나라, 잠시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세계인은 알고나 있을까. 이 휴전협정을 관리하기 위해 외국군대가 주둔하고,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려면 대통령도 유엔군사령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실을 얼마나 알까. 그래서 ‘70년 지속된 한국전쟁 이제 끝내자’는 운동이 준비되고 있다. 이는 문정현 신부의 평화바람을 비롯해 참여연대 등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그 운동에서 ‘평화교육’을 담당할 단체가 ‘피스모모’다. 이 단체 문아영 대표(36)를 만났다.

“1단계 목표는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한국전쟁 70년 이제 전쟁을 끝내자’는 매우 크고 야심 찬 운동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지난해 5월 평화·통일운동에 관심 있는 운동가와 시민 70여 명이 전북 군산의 ‘평화바람여인숙’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3·1운동처럼 ‘전쟁을 끝내자’는 목소리를 전국·전 국민이 외치자는 운동의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전쟁 70년인 올해부터 시작해 정전협정 70년인 2023년까지 현재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바꾸자는 것이 1단계 목표다. 일단 많은 서명을 받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등 국제적 여론을 환기할 것이다. 우리 피스모모는 이 운동에서 평화교육을 맡고 있다.”

-지금의 불안정한 휴전협정을 종전선언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운동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이 꾸준히 전개하고, 얼마 전 평화네트워크는 종전선언문도 만들어 공개한 적이 있다.

“알고 있다. 이번 운동에는 평통사와 평화네트워크, 이밖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통일의병, 6·15 관련 단체 등 거의 모든 평화·통일운동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 공간에서 왜 전쟁이 끝나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피스모모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달라.

“피스는 평화이고 모모는 ‘모두가 모두를 가르친다’, 즉 서로 가르친다는 의미다. 2012년부터 활동했다. 420여 명 회원 대부분이 교사나 교육활동가 시민이다. 410명 후원자도 있다. 우리 커리큘럼을 이수하고 전국 청소년을 상대로 평화교육 프로그램 지도한다. 우리 평화교육의 특징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서로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형극을 해보면서 인형과 조정자 역할, 즉 일상에서 권력 관계를 직접 체험함으로써 부당함과 불평등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 평화교육이 왜 필요한가.

“새롭게 출현하는 세대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탈분단평화교육’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 우리는 분단을 해체하는 방식·문화·상상력에 방점을 찍고 북한을 적대시하거나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적 방식 사이의 무엇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평화저널리즘 강좌도 열고 있다. 이 강좌에 <경향신문> 기자를 강사로 초빙했다.

“요즘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언론인도 많지만, 클릭수에 매달린 언론인이 점점 많아진다. 특히 요즘 언론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이 많다는 점도 문제로 느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평화저널리즘팀을 만들고 강좌를 마련했다.”

한반도 평화에 교육과 언론이 중요하다는 것에 백 번 공감한다. 특히 젊은층의 통일 무관심 내지, 백안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혐오교육과 전쟁위기를 조장한 언론의 영향이 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인 2016년 조사를 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20대에서 41.4%, 30대 40.1%로 절반을 넘지 못한다. 20~30대의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2007년 이후 계속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조사에는 20대 53.6%, 30대는 52.3%로 과반이 넘었다. 조사보고서는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즉 교육과 미디어가 냉전 혹은 반통일 의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거대한 암초’는 바로 군사주의 문화

피스모모가 청소년·시민을 상대로 평화교육과 미디어교육을 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문 대표는 “우리는 왜 북한을 적이라 생각하는가, 북한을 적이라 생각하는 메시지는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적’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없는가, 분단이라는 조건이 정말 해체될 수 없는 공고한 구조인가, 일상에서 내가 분단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등을 고민하고 검증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이런 질문에서 우리 안에 웅크린 ‘거대한 암초’가 바로 군사주의 문화임을 발견했다. 그는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동자세나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 수업시간에 선생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 등이 군사주의 문화”라며 “이 같은 일상에서 군사주의적 문화가 북한을 적대적으로 본 요인이 아니었는가”라고 반문한다. 교사들이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은 군사주의 문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를 비롯한 평화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1월 20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솔레이마니와 이라크 부사령관 암살에 항의하고 있다. / 피스모모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를 비롯한 평화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1월 20일 미국대사관 앞에서 솔레이마니와 이라크 부사령관 암살에 항의하고 있다. / 피스모모

그는 현재 교육 일선에서 하고 있는 ‘나라사랑 교육’도 군사문화의 잔재라 지적했다. 그는 나라사랑 교육은 이전 멸공·승공 교육에 뿌리를 두고 이름만 바꿔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 때 박승춘 보훈처장이 나라사랑 교육예산을 대폭 늘렸고, 이는 박근혜 정권 때 그대로 이어졌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왜 이런 사업을 하느냐’며 조직을 없앴지만 예산은 그대로 남았다”고 말했다.

군사문화는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와 다른 존재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으로 확산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사람을 종북이라 매도하는 것이 대표적잔재이고, 심지어 성평등을 주장하거나 성소수자도 적으로 돌리는 것도 군사문화 잔재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래서 그는 “나라사랑 교육이 사라지고 평화사랑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시민사회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제기했고, 국회의원도 법을 바꾸고 교육부도 자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매년 4월 22일부터 4월 29일까지는 ‘세계군축행동의 날’ 주간이다. 스톡홀름에 있는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행하는 ‘세계군사비지출 보고서’(연보) 발간에 맞춰 전 세계에서 군비축소·평화를 촉구하는 행사가 열린다. 우리도 4월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피스모모는 이 연감을 국내에 알리고 있다. 문 대표는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집중된 곳인데 그 실상을 알리는 정보가 별로 없다”면서 “국제평화연구소의 간행물이나 연보를 번역·요약해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스모모는 이 연감을 번역해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물론, 책으로 만들어 배포한다. 일본·중국도 국제평화연구소 간행물을 자국어로 번역해 제공하지 않는다.

문 대표는 두 번이나 남북정상회담을 한 문재인 정부에도 쓴소리를 한다. 그는 “우리 군사문화에 대한 성찰 없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데려와 강연을 듣는다고 우리가 평화에 가까워지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평범한 사람·단체들이 전쟁 없는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공간에 세금이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평화는 정부·여당만이 아닌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합의를 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안보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 국민이 안보를 담보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한국사회 평화는 합의를 통해야

문 대표는 1984년 강원 춘천 출생이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청주교원대에서 초등교육·독일어 교육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2011년 코스타리카 유엔평화대학에서 평화교육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독일 베르그호프재단이 운영하는 평화교육연구소에서 인턴연구원을 잠깐 하고 2012년 피스모모를 설립했다. 그가 평화·교육 사업에 매달린 것은 고향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그는 “군인이 훈련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면서 “학창시절 삐라를 줍고, 민방공 훈련과 교련교육을 통해 군사문화를 체득하면서 북한을 적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교육포럼 한국시민사회 대표단(2015년), 아시아태평양 청년 청소년 평화안보 지역자문회의 한국대표단(2017년) 국제교원노조연맹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 한국시민사회 대표(2017년), 아시아·유럽 공동안보워크숍(2019년) 등 국제사회에서 교육·평화 활동가로 뛰었다. 현재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청년특별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순위에 들지 못했지만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나는 시민운동이 탈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평화는 밖에서 요구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피스모모는 2017년 평화대학과 평화/교육 연구소를 창립하는 등 확장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항공모함이나 전투기가 아닌 바이러스나 기후가 안보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것”이라며 “세계는 파트너십·공동안보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70년 지속된 한국전쟁을 끝내자’를 넘어 ‘군사주의를 버리고 세계 평화운동을 세력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도, 혹은 꿈 같은 얘기이기도 하다. 마치 군사·안보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30대 여성이 다윗처럼 돌멩이를 하나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는 “체 게바라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바보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결국 사랑이 바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면서 “안보는 국가가 아닌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원희복의 인물탐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