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예술 사이의 치열한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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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미나 레자는 연극 <대학살의 신>과 <아트>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여러 작품을 통해 중산층, 특히 고상한 취향을 지닌 지식인 계급을 풍자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다른 계층과 집단의 시선으로 그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허식과 위선을 까발리게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아트>에는 크게 두 가지 테마가 담겨 있다. 하나는 오랜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고, 다른 하나는 수용자 측면에서 바라본 현대예술의 가치에 대한 문제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테마를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데서 작가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다. 15년이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세르주·마크·이반은 서로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이지만, 최근 세르주가 구입한 미술작품 한 점을 두고 미묘한 변화를 겪게 된다. 하얀 바탕에 하얀 줄이 그려져 있다는 그 ‘예술품’이 마크에게는 하얀 판때기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세르주는 무려 3억 프랑이란 거금을 들여 그 작품을 구입한 스스로의 안목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바로 이 하얀 판때기 혹은 거장의 예술품인 그림 한 점이 이 두 가지 테마를 이끌어내는 주된 모티브가 된다.

청춘을 공유하며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삶의 양상과 계급, 취향이 달라지면 그 우정을 오래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 세르주와 마크가 그림 한 점을 두고 펼치는 설전은 그림 그 자체에 대한 단순한 의견차라기보다는 어느덧 다른 삶의 카테고리에 속하게 된 서로에 대한 아쉬움과 신경전에 가깝다. 한편 이들 불화의 씨앗이 된 하얀 그림은 세르주와 마크, 이반의 각기 다른 감상을 통해 현대예술, 특히 관객의 즉각적인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추상예술의 감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답이 없을 것 같이 펼쳐지는 두 가지 테마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하나의 사건, 혹은 놀이를 통해 중간지점을 찾게 되는데, 바로 세르주가 마크로 하여금 자신의 값비싼 그림에 낙서를 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관객들마저 살짝 긴장하게 만드는 이 놀이는 사실 세르주가 건네준 펜이 쉽게 지워지는 것이었다. 세르주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연극에 불과했지만, 이 짤막한 연극을 통해 세르주와 마크 사이의 우정 그리고 현대미술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 차라는 까다로운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거리를 좁히며 해결의 가능성을 던져준다.

일단 세르주가 그간 불화의 원인이었던 그림을 기꺼이 우정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마크와의 신뢰를 회복했다면, 마크 역시 그 하얀 그림을 마구잡이로 망치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어떤 심상을 그려 넣었고, 그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하얗게 변해버린 캔버스를 보면서도 이제는 ‘하얀 판때기’ 너머 담긴 어떤 의미를, 자기만의 심상을 떠올리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혀 좁혀질 것 같지 않은 문제들에 희망의 가능성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5월 17일까지 백암아트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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