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3부작 마지막 권 <사신의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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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환 없애기, 지구촌 정치질서의 우주확장

총 1904쪽(번역판)이나 되는 류츠신의 <삼체> 3부작 마지막 권 <사신의 영생>은 시리즈 전체의 거의 절반(808쪽)에 달한다. 덕분에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묵직한 주제가 차고 넘친다.

류츠신의 <삼체> 3부작 마지막 권 <사신의 영생> 한국어판 표지

류츠신의 <삼체> 3부작 마지막 권 <사신의 영생> 한국어판 표지

우주 공간에서 쌍방 간 요란한 신무기를 주고받는 우주선들이 티격태격하는 매우 흔한 스페이스오페라 도식을 훌쩍 뛰어넘어 적(敵)의 행성이 공전하는 항성을 ‘초중량 물질’로 직격해 완파한다. 3차원 공간이 2차원으로 주저앉는 통에 인류는 물론이고 태양계 전체가 두께 없는 종잇장처럼 변해 멸망한다.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함락되기 직전 이곳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과 우리 우주가 11차원이라는 ‘끈이론’이 깊이 맞물리는가 하면,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여분의 숨겨진 차원들이 그토록 작게 돌돌 말려지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시각화한다. 심지어 우주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같은 공익 어젠다를 추구하는 외계종족도 등장한다. 이밖에도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인지 현기증이 날 만큼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즐비하다. 포켓우주와 평행우주, 인위적인 빅크런치, 외계인 아동을 위한 동화로 포장된 인류에게 전하는 비밀메시지(인류 멸종 회피방안), 동면기술의 예기치 못한 사회적 부작용, 알쿠비에르 우주선이 남긴 항적에서 빛이 굼벵이가 되어버리는 블랙존 현상, 1960년대 실제 연구되었던 오리온 프로젝트를 업그레이드한 계단프로젝트(현존기술로 최대한 빠른 우주선 발사하기), 양자 얽힘 현상을 활용한 실시간 성간(星間)통신….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신의 영생>의 아이디어가 모두 결국에는 하나의 묵직한 주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우주가 일종의 ‘암흑의 숲’이란 가정이다. 작가는 우주 곳곳에 지적인 존재들이 가득하다고 전제한다. 다만 남들에게 자기네가 눈에 띄지 않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138억 년 이상 나이 먹은 우주에서 산업혁명의 문턱을 넘어 과학기술문명으로 들어선 지 고작 몇 세기 되지 않는 인류보다 훨씬 앞선 외계문명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얼핏 생명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암흑의 숲 같지만 우주에는 섣불리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포스의 지적인 종들이 부지기수란 얘기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네 못지않은 지적인 존재가 우주 어디엔가 또 존재할까봐 전전긍긍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어찌 나올지 두렵지 않은가?

설사 우리보다 훨씬 문명이 낮은 상대라 해서 방심할 일은 아니다. ‘언제나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위세가 얼마나 갔던가? 미·중 무역분쟁의 근본 원인이 중국에 지구촌 패권을 넘겨줄까봐 안달복달하는 미국의 복잡한 속내 탓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사신의 영생>의 세계는 지구촌 정치질서의 우주확장판이다. 인류는 불과 4.3광년 떨어진 삼체인들의 침공을 막아내기도 버거운 판에 거의 신급(神級)에 가까운 미지의 종에게서 차원 공격을 받자 속수무책이다. 미국이 화학무기 보유 여부에 상관없이 이라크를 꺾어버렸고, 핵 보유 징후를 빌미로 이란 또한 꺾으려들 듯이, 고도문명에 도달한 외계종족들 또한 인류와 삼체인들이 아직은 초딩 수준 문명에 머물러 있지만 훗날 후환이 될지 모르니 일단 없애고 봐야 할 대상이다. 정말 우리 우주가 암흑의 숲이라면 상호불신이야말로 최대 위협요소 아니겠는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누누이 말해주듯이.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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