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전자카드’ 우체국이 맡는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공사현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퇴직금을 받는다. 사업자가 공사현장에서 일한 노동자 명의로 건설근로자공제회에 하루 5000원씩‘퇴직공제부금’을 납부하는데 노동자들은 은퇴하거나 65세가 넘으면 이 돈을‘퇴직금’처럼 받게 된다. 원청이 노동자가 속한 하청업체에 공제부금을 지불하면 하청업체가 노동자의 근무일수 내역과 공제부금을 공제회에 전달하는 구조다. 제도가 도입된 건 1994~1995년 연이어 터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문이었다. 건설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해야 공사 품질을 높이고 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정부가 1997년 건설근로자 퇴직공제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건설노동자들이 2016년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건설노동자들이 2016년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업 시행 20년이 훌쩍 지났다. 실효성은 높지 않았다는 평가다. 한 노동자는“34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퇴직금은 고작 432만원이었다. 너무나 억울하고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노동자들은 퇴직공제부금 제도를 현실화하라며 2017년 마포대교를 점거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정확한 납부시기와 적립금액을 모르고, 누락되는 근무일수도 상당하다. 2013년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에 대해 연구한 대구 계명대 산학협력단은 “사업자들이 사회보험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자를 자주 교체하거나 월 20일 이상 근로하는 경우도 19일 이하로 일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는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도덕적 해이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자기만 가진 정보와 조건을 이용해 상대방을 희생시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 의해 정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는 ‘정보 비대칭’ 문제를 악용한 것이다. 정보경제학자들은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는 건 도덕의 재무장이 아니라 비도덕적 행위를 못 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추진되는 정책이 정부의 ‘건설노동자 전자카드’ 사업이다. 노동자들이 공사현장을 출입할 때 출퇴근 단말기를 찍는 경우가 많다. 이 기록을 건설근로자공제회에 자동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근무누락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부터 공사금액 100억원 이상 공공사업 또는 300억원 이상 민간사업 현장에서 전자카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전자카드가 적용되는 공사장 규모는 2024년까지 1억원 이상 공공사업, 50억원 이상 민간사업으로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앞으로 공제부금 액수를 높이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인 건설기계 노동자에게도 문을 열어두는 게 과제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이 사업에 우정사업본부가 전자카드 발급사업자로 선정됐다. 공사현장의 퇴직공제부금 제도 확립과 전자카드 도입을 위해서는 읍·면 단위까지 뻗어 있는 전국 네트워크가 필수다. 노동자를 위한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공공기관이자 서민금융기관인 우체국에 특화된 일이기도 하다. 우체국체크카드로 전자카드를 발급받은 건설노동자는 우체국에서 요구불예금 가입 시 우대금리를 받는다. 영업시간 외 국내 ATM이나 전자금융으로 출금, 또는 타행이체 시 수수료를 전액 면제받을 수 있다. 해외송금 ATM 수수료도 70% 할인된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우정이야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