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1: 당한 만큼 갚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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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조직에 맞서는 ‘난세의 간웅’

2013년 일본 TBS에서 방영한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는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편성된데다 금융권 이야기를 다루는 탓에 방영 전 기대치는 낮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은 고공 상승해 금세 40%를 웃돌았다. 특히 마지막 10화의 순간 시청률은 50%를 넘어서는 등 방송 내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원작자인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이후 속속 드라마로 제작되며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독 <한자와 나오키> ‘시즌 2’만큼은 매번 변죽만 울리다 불발되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몇 해, 마침내 올해 4월 ‘시즌 2’ 방영을 확정하며 7년 만의 귀환을 알렸으니 시청자들이 덮어놓고 형만 한 아우를 기대할 만하다.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 1> 한국어판 표지 / 인플루엔셜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 1> 한국어판 표지 / 인플루엔셜

원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자 드라마 전반부에 해당하는 <한자와 나오키 1: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상사의 실책을 뒤집어쓴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가 은행의 관행인 ‘꼬리 자르기’에 저항하는 분투기를 그린다. 이야기는 서부오사카철강이라는 회사가 도산함에 따라 5억 엔의 대출금을 받을 수 없게 된 ‘대출 사고’에서 시작한다. 이에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서부지점의 융자과장 한자와는 대출 책임자로서 질책받지만, 사실 이 대출은 처음부터 지점장인 아사노가 한자와를 배제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사노는 나 몰라라 한자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니 억울한 그로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를 쓴 이케이도 준은 대형 은행에서 근무한 실제 경력을 작품에 면밀히 반영함으로써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은행의 속내를 자신의 인장으로 삼은 작가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감사 과정을 비롯해 거만하기 짝이 없는 국세국 직원들과의 면담 등은 독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위기로 그려지고, 이에 늘 담대하게 대처하는 한자와는 벼랑 끝에 이르러 시원한 역전의 쾌감을 안긴다.

또한 서부오사카철강의 대출 사고가 처음부터 의도된 계획 도산임을 알게 된 다음 은닉한 재산을 회수하기 위해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영락없는 미스터리극이자 하드보일드 장르의 핵심과도 맞닿는다. 단적인 예로, 꼼짝없이 좌천 위기에 몰린 한자와가 작품 내내 신랄하게 비판하는 은행은 단순한 배경이기 이전에 실재하는 거악으로 묘사된다. 그가 말하는 은행이란 ‘인정사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이다. 자연히 이런 부조리한 조직에 대항해 자신의 무고를 관철하려는 한자와는 정의를 부르짖는 이 작품의 정수나 다름없는 존재로 거듭난다.

한자와는 1988년 거품경제 시대 엘리트로 입사해 현재는 내려앉은 경기만큼이나 떨어진 일개 은행원의 위치에서 ‘날씨가 좋으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 은행의 비뚤어진 생리에 맞서 싸우는 소영웅이다. 더욱이 아사노 지점장의 유착 증거를 발견하고 이를 치밀하게 이용하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그는 단순한 영웅을 넘어 곧 ‘난세의 간웅’이 된다. 그저 정의롭기만 한 우리 편이 아니라 간교하고도 영악하게 승리하고 출세까지 거머쥐는 우리 편일지니 매 순간 그의 저돌적인 말과 행동에 독자들은 절로 고개를 주억거릴 법하다.

작품의 원제는 ‘우리들 버블 입행조’지만 국내 출간명은 드라마 제목에 작중 한자와를 상징하는 대사인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부제가 덧붙었다. 입 밖으로 되뇌면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는 대사지만 정의로운 약자가 악을 영리하게 척결하길 바라는 현대인의 갈증이 응축된 말이기도 하다. 권선징악·사필귀정이 조금 뻔하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이기는 우리 편이 건네는 카타르시스만큼은 생생한 세계 위에 제법 의미 있게 자리한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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