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 윈더렌의 <에너지 필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빙하 녹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길 위의 사람들이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쁘게 걷고 있다. 이어폰에서 들리는 소리와 노래를 통해 세상의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노래]야나 윈더렌의 <에너지 필드>

최근 이 코너에서 언급된 노래들을 꼽아보자.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로 아이유, 꽃다지, 오아시스, 김광석, 이하이, 크라잉넛 그리고 임재범에게 닿는다. 하지만 저 이어폰은 손이 닿는 바깥과의 소통은 고집스럽게 막는다. BTS가 끝나면 또 다른 엑소가, 바흐가 끝나면 모차르트가 이어진다. 내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공지능의 추천에 따라 귀에 달달한 노래들만 듣는다. 귀에 거슬리는 것은 아예 들을 기회조차 없다. 세상에 귀를 닫고, 내가 원하는 것만 들으니, 이것은 뭐, 낙원이라고 해도 되려나.

나는 이 추천이 달갑지 않다. 다른 노래에, 다른 소리에 귀를 닫고 나의 노래만 찾는 일은 때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늘 그러는 것은 재앙일 수도 있다. 인생의 여러 사건에 얽힌 노래가 왜 없겠는가? 고등학교 다닐 때, 축제 때마다 듣던, 함께 놀던 친구들의 땀내가 함께 나는,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친구는 늘, 자기 장례식에서 틀 노래라는 이야길 입에 달고 살았다. 대학 때, 여러 사람 앞에 노래 불러야 하면 두근거리면서 강애리자의 <분홍립스틱>을 불렀다. 페레스트로이카의 문턱에 있던 모스크바에서 피부색 다른 친구들이 각자의 언어로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던, 가슴 뜨거웠던 밤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간들로만 채워진 인생을 상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너의 노래, 너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고, 그 소리 속에서 나의 노래를 찾아야 한다.

너의 소리, 너의 노래에 한없이 귀를 기울이는 작가가 있다. 오늘 고른 음반의 주인공, 야나 윈더렌. 10년 전, 내가 운영하던 공간에서 그의 음반을 청중과 함께 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제법 좋은 스피커를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우리는 그의 앨범 <에너지 필드>를 들었다. 그는 소리를 직접 만들기보다는 소리를 수집해 다시 우리 앞에 꺼내 놓는 사람이다. 이 앨범에는 빙하의 얼음이 녹는 소리가 담겨 있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소리에 한없이 잠겼다. 그는 보이지 않는 음원이 내는, 숨겨진 소리를 녹음한다. 그 녹음을 위해서 최첨단 마이크와 기록 장비가 동원된다. 우리가 들을 수 없지만 존재하는 소리를 찾는 그의 작업은 빙하가 녹은 틈바구니에 마이크를 내려보내기도 하고, 강과 바다 바닥에서 소리를 찾기도 한다. 그 소리는 자연의 에너지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움직임이 만들기도 하고, 그곳에 사는 생명이 소리를 낸다.

윈더렌이 예민하게 잡아낸 다양한 소리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노래보다 우리의 정신에 스며들어 적신다. 상상은 해보았는가? 플랑크톤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소리, 바다의 얼음이 흔들리면서 쪼개지는 소리, 바다표범·혹등고래·범고래가 내는 소리, 게·가재·새우가 바닥을 걷는 소리. 그 소리의 신기함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의 엄숙함에 잠긴다. 나는 그가 들리지 않는 새로운 소리를 찾는 시도가 음악 앱이 골라주는 노래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으로 우리를 이끌기를 바란다. 이어폰을 벗고 우연히 들었던 잡음(雜音)이 당신 인생의 노래가 될지도 모른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내 인생의 노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