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명의 술래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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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살인범과 쇠락한 명문가의 소문

한밤중에 무료 상담전화인 ‘생명의 전화’에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한참의 침묵 후 “다~레마가 죽~였다”라는 어린아이의 음산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뒤 아이 목소리 대신 성인 남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혹시 유괴된 아이가 몰래 유괴범의 휴대전화라도 만진 게 아닌가 의심하며 남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하지만 남자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오히려 ‘생명의 전화’의 본래 목적 그대로 명백한 자살 징후만 드러낼 뿐이다. 이곳으로 전화하기 전 남자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추억의 장소에서 매일 친구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받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그런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명의 친구들 모두 전화를 받아 지금까지 목을 매지 못했으며, 이제는 마땅히 전화할 친구도 없어 마지막으로 ‘생명의 전화’로 자신의 목숨을 시험했다는 것이다.

미쓰다 신조의 <일곱 명의 술래잡기>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미쓰다 신조의 <일곱 명의 술래잡기>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곧 상담원은 남자와의 긴 대화를 토대로 장소를 특정하고, 그의 자살을 막고자 담당 공무원들이 출동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남자의 혈흔과 소지품만 남아 있을 뿐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윽고 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기이한 전화가 신호라도 되는 양 남자와 통화했던 그의 소꿉친구들이 차례로 살해당한다. 모두 아이 목소리의 전화를 받은 뒤 일어난 일이다. 30년 전 어울려 놀던 단짝 친구들의 목을 죄어오는 연쇄살인범은 누구일까? 아니, 정말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저주 때문일 것일까?

<일곱 명의 술래잡기>의 작가 미쓰다 신조는 일본의 대표적인 호러 미스터리 작가다. 사실 ‘호러 미스터리’라고 하면, 작중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호러 미스터리 작가 하야미 고이치의 설명 그대로 의미부터가 반어적이다. 호러는 부조리한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미스터리는 이성과 논리를 바탕 삼아 부조리한 사건을 합리적으로 정련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쓰다 신조는 호러와 미스터리라는 두 장르의 장점을 고루 활용하면서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는 내내 둘 사이에서 유연한 줄타기를 선보인다. 우선 연쇄살인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한 것이라는 불온한 분위기를 끊임없이 피우는 동시에 남자의 전화를 받은 상대 가운데 범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본격 미스터리 특유의 소거법을 절묘하게 아우른다. 게다가 공포의 근원 또한 미스터리의 해답으로 수렴하며 마침내 이는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으로 형상화된다. 자기방어 본능에 의해 일부러 기억 깊숙한 곳에 잠가둔 흉측한 사건의 진상을 떠올리면서 연쇄살인의 원인 또한 불가사의한 저주의 기운 그대로 보다 내밀한 진실을 향하는 것이다.

아이의 노래 가사인 “다레마가 죽였다”는 본래 ‘다루마가 굴렀다’로, 우리 식으로 말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가리킨다. 술래가 등을 돌리고 문구를 외는 사이 나머지 인원들이 몰래 움직이는 옛날 그 놀이 동안 여섯 명의 친구가 아니라 일곱 번째 동료가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떠올릴 수 없었던 기억의 공포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통 구전 가사나 설화 같은 민속학에 괴담을 접목하는 미쓰다 신조의 소설은 이 작품 안에서도 불분명한 가사가 담보한 진실, 미지의 살인범과 오래전 쇠락한 명문가의 음습한 소문, 인간의 힘을 넘어선 저주와 그에 따른 공포와 죄책감을 마구 휘돈다. 끝내 진범의 정체를 정확히 규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미쓰다 신조 특유의 결말은 추리 게임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의라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을 공포와 미스터리의 요소로서도 첨예하게 활용한다. 과연 너무나도 부조리하고 너무나도 합리적인 이야기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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