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구조로 이루어진 퍼즐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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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모르고 넘어가지만, 나중에 다시 돌이켜볼 때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하고 새삼 깨달음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니콜라스 빌런 작, 김지호 연출의 연극 <엘리펀트 송>은 시종일관 무대 위에 미스터리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반전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바로 그러한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 관극(觀劇)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나인스토리 제공

나인스토리 제공

일단 이 작품은 전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두 개의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 위에서는 극 중 마이클이 병원장인 닥터 그린버그와 벌이는 두뇌 게임이 펼쳐지고, 동시에 무대 밖에서는 작가 니콜라스가 관객을 대상으로 벌이는 게임이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엘리펀트 송>의 스토리 구성은 미스터리 스릴러 공식을 따르고 있다.

캐나다 브로크빌의 한 병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와 캐럴 그리고 전구 장식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막이 오르고 시작되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어젯밤 이후 닥터 로렌스가 아무런 흔적도 소식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 닥터 그린버그가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오지만, 유일한 단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이클은 시종일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말만 하고 있다. 이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수간호사 피터슨 역시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마이클은 오히려 그녀를 경계하며 자꾸 떼어놓으려 든다.

관객들은 당연히 공연 내내 닥터 로렌스는 어디로 간 것인지 그의 행방에 궁금증을 갖게 되고, 이어지는 마이클의 증언에 따라 과연 성추행이 실제 있었던 것인지, 수간호사 피터슨의 비밀은 무엇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갖게 된다. 마치 극 중 닥터 그린버그가 마이클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관객 역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이러한 ‘전혀 중요하지 않은’ 미스터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면 병원장 그린버그가 자신이 마이클과의 게임에서 졌음을 알게 되듯이, 관객 역시 이 모든 비밀이 마지막의 반전을 위한 페이크 장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반전에 처음 보는 관객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게 되지만, 허탈함과 배신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앞부분의 복선과 암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마이클이 처음부터 왜 닥터 그린버그에게 자기의 환자기록을 보지 못하게 했는지, 왜 피터슨 수간호사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는지 등 관객들은 마지막 마이클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그의 첫 대사, 첫 행동이 무엇을 의도하고 계산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마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듯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다시 되짚어가다 보면, 마이클이 얼마나 치밀하고 주도면밀하게 이 모든 상황과 오해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을 준비하고 계획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2월 2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

<김주연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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