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문학가들의 가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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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죄수복을 입은 이윤이 면회장에서 세훈을 만난다. 문인들의 모임인 ‘칠인회’ 멤버이자 시인인 이윤에게 천재 소설가 김해진이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히카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세훈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윤은 히카루의 정체에 얽힌 비밀을 알고 있는 듯, 세훈에게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지 않으면 편지도 보여줄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이들에게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요즘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는 창작 뮤지컬 <팬레터>의 무대 위 이야기다.

라이브㈜ 제공

라이브㈜ 제공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비싼 입장권이다. 아무래도 배우가 매일 무대에서 라이브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활용하다보니 인건비나 콘텐츠의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다. 기계적으로 녹화해서 반복해 재생해주는 영상물과는 태생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대는 남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흥행에도 낭패를 보기 쉽다. 우리나라 공연들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은 이야기의 배경을 활용한 ‘연상적 전이’다. 그래서 근대가 많이 등장한다. 오늘날을 빗대 이야기의 재미를 담아내기도 쉽고, 그리 머지않은 시·공간이다보니 낯설지도 않을 뿐더러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시간적 배경을 비주얼에 담아야 하는 부담도 크지 않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은 극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로 활용하기에 용이하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는 선과 악의 설정도 어렵지 않고, 극한적 상황이나 시대적 환경의 설정도 극적으로 얽어서 사용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팬레터>는 적절한 시대적 상황과 인물의 설정이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이다. 구인회 등 실존했던 문학가들의 사연에 있었을 법한 가상의 이야기를 더하는 ‘팩션(faction)’ 형태의 설정으로 활용된다. 의상과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복고적인 이미지는 근대 시기라면 떠오르는 대중의 낭만과 향수의 감성을 적절히 소구해낸다. 애틋하고 아련하면서도 다소 무책임하고 유약해 보이기까지 한 등장인물의 모습이 시선을 끌며 관객을 유혹한다.

감미로운 선율의 멜로디가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가상의 인물인 히카루가 등장해 정세훈과 2중창으로 노래하는 몽환적인 장면이나 김해진과 어우러지는 3중창이다. 절묘한 화음과 불편한 상황 묘사가 이색적인 감흥을 전한다. 무대 상상력이 뮤지컬과 어우러져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절묘함으로 완성된다. 일제강점기 순수한 창작 활동에 집착하던 우리 예술가들의 퇴폐적 낭만주의 성향도 언뜻 느껴져 흥미롭다.

서스펜스물을 좋아하는 외국 공연 관계자들에게도 어필되고 있다. 특히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일본이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등 활발한 해외성과를 올리고 있다. 창작 뮤지컬의 한류 시대도 머지않은 것 같아 더욱 반갑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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