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19’ 4인 전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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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르르… 쓰르르…’. 미니멀한 나무 형상 너머로 투사된 움직이는 그림자로, 박새나 곤줄박이 같은 앙증맞은 몸집의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철망 벽 너머 새의 존재를 감지하고 상상한다. 고요하고 청명한 소리의 울림에 촬영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그런데 아뿔싸, 그들을 가둬놓은 천장까지 뻗어 있는 높은 철망이 실은 나를 가둬놓은 철망은 아닐까, 혼란 속에 빠져든다.

‘올해의 작가상 2019’, 김아영 작가 / 필자 제공

‘올해의 작가상 2019’, 김아영 작가 / 필자 제공

‘올해의 작가상 2019’, 홍영인 작가 / 필자 제공

‘올해의 작가상 2019’, 홍영인 작가 / 필자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상 2019’에 참여 중인 홍영인 작가의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작업에 대한 얘기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운영되던 ‘올해의 작가’ 전을 전신으로 2012년에 시작한 ‘올해의 작가상’은 역량 있는 작가 발굴 및 현대미술 비전 제시라는 목적하에 해마다 4인의 작가를 선발해 전시하고 최종 1인의 수상작가를 정한다. 비슷하게 영국에 ‘터너상(Turner Prize)’이 있다. 일생의 업적을 조망하기보다는 최근의 예술적 성취에 주목한다는 점 등에서 둘은 비슷하다.

올해는 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 작가의 전시가 내년 3월 1일까지 치러진다. 김아영 작가는 이질적 존재들의 이주를 주제로 한 영상작업 및 이와 어우러진 벽면 텍스트,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박혜수 작가는 ‘우리’라는 신화와 그 실제의 간극을 직접조사를 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포그래픽, 설치, 아카이브 작업 등으로 보여준다. 이주요 작가는 창고를 개방하는 경험을 미지의 세계를 만나는 경험에 빗대어 포장을 뜯지 않은 예술작품의 부피감과 존재감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은 특히 역대 최초로 선정작가 4인 전원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전시다. 필자는 9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이 발굴하는 신진작가들의 등용문 격인 ‘젊은 모색’ 전의 30주년 전시에서 43인의 참여작가 중 여성작가가 3인에 불과했다는 글을 <여성신문>에 쓴 바 있다. 대략 산술적으로 10%도 되지 않던 현대예술을 대표하는 여성작가의 비율이 100%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미술계는 성별 관계없이 오직 작품성만으로 평가하는 풍토가 자리잡은 곳이 된 것일까? 올 9월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미투운동 시대의 미술사’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는 “현대미술(사)에서 젠더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모아지기도 했다. 여전히 여성작가의 약진에 호들갑을 동반한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예술’에서 ‘젠더’를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올해의 작가상 2019’, 홍영인 작가다는 식의 ‘무색무취주의’ 또한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색무취주의’는 작품성과 작가의 노력만이 예술적 성취를 좌우한다는 ‘천재 예술가론’으로도 이어진다. 불공정한 사회구조 내에서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에 대한 청년세대의 반격에서 예술계만이 예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이 그 선정 의도와는 별개로 사회 변화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수많은 여성작가, 청년작가들에게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정필주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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