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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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삼아 벌인 괴롭힘, 그 참혹한 ‘학교폭력’

일본 미스터리소설에서 학교는 빼놓을 수 없는 공간 중 하나다. 다양한 촉법소년 범죄를 비롯해 소년범에 대해 형사상 특례와 보호처분 등을 규정한 소년법은 한때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주제였다. 특히 현재 학교를 다니는 학생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 누구나 겪은 불합리한 시절이라는 점은 학교를 기이하면서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어내기 충분하다. 또한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기에 더더욱 도덕이나 규칙이 강요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일반 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상식의 선을 쉽게 넘나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학교는 일종의 독특한 폐쇄 공간이다. 얼핏 등·하교가 가능한 열린 공간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은 교실 문이 닫히는 순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고 우리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유키 슌의 소설 <밀어줄까?> 한국어판 표지 / 제우미디어

유키 슌의 소설 <밀어줄까?> 한국어판 표지 / 제우미디어

<밀어줄까?>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타이라 잇페이는 적당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교를 다니는 중학교 2학년이다. 어느 날 오랫동안 등교를 거부하던 동급생 마유코가 다시 교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엔 마유코를 방관하던 학급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그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마유코는 개의치 않고 모든 괴롭힘에 의연히 대처한다. 잇페이는 그런 마유코를 조금씩 도와주고 감싸지만 어쩐지 마유코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불온한 분위기는 점점 파급돼 학교 주변에서 심하게 훼손된 비둘기 사체가 발견되고, 동급생들은 연달아 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학교 익명게시판에 잇페이가 과거 왕따 가해자였다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곧 아이들은 목표를 바꿔 잇페이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다 이내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우선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잇페이의 섬세한 심상 묘사에서 찾을 수 있다. 잇페이는 처음엔 반 아이들을 노란색이니 분홍색이니 하며 성격과 위치를 분류하는 라이트노벨풍의 문장으로 한껏 밝고 평범한 학생으로 분한다. 여기에 잇페이의 자유분방한 집안 분위기는 그에게 어른스러움마저 더한다. 그렇기에 왕따를 당하면서 그가 감내하는 고통과의 간극은 더더욱 크게 다가온다. 잇페이는 괴롭힘과 폭력으로 인해 ‘이인증(離人症)’, 즉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스스로 관찰자가 되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등 여러 생경한 감정을 증언하면서 피해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닥친 변화를 작품 내내 생생하게 대변한다.

왕따를 감내하고 동시에 동급생의 의문사를 추적하면서 잇페이는 그동안 우리 어른들이 갖고 있던 의문에도 나름의 답을 내어준다. 왜 학교는 눈앞에서 집단 괴롭힘이 벌어지는데도 모르고 있는지, 왜 당하는 학생은 누구에게 말하지도 상담하지도 못하는지를. 잇페이는 말한다. 완벽할 정도로 교사의 눈을 피해 벌어지는 일을 그 누가 알겠느냐고. 또한 “창피를 무릅쓰고 처참한 자신을 솔직히 꺼내놓을 정도로 강건한 마음을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고도 고백한다. 그래서 이제야 괴로워서 자살하는 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고 말이다.

학생들의 잇따른 죽음과 단짝 친구의 등교 거부, 그리고 잔혹한 집단 괴롭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힘겹게 뒤쫓다보면 그곳엔 결국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벌인 사소한 장난과 죄의식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이는 마유코가 잇페이에게 여러 번 “살의가 없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던 데에 대한 해답인 동시에 무감하게 벌이는 아이들의 폭력, 그 끔찍함과도 정확히 맞닿는 해답이다. 그냥 재미 삼아 벌인 폭력과 괴롭힘, 그 참혹한 ‘보통의 사건’이 도처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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