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 서홍관 “담배 생산·판매 원천 금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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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에서 담배를 뻑뻑 피고,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담배를 피던 정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는 것이 예의였던 시절이다. 이 시절(1980년대) 남성 흡연율은 무려 79.8%에 이르렀다. 이 ‘몽매’했던 시절 폐해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연세대 보건대 정금지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흡연자와 흡연 관련 사망자 예측’에서 한 해(2017년) 흡연으로 6만1723명이 죽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남성 흡연율은 크게 줄고 있지만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왜일까.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61)을 만난 것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원희복의 인물탐구]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 서홍관 “담배 생산·판매 원천 금지해야”

20~30년 전 흡연 결과 지금 나타나

-남성 흡연율은 2017년 38.1%로 대폭 감소했는데도 사망자가 계속 느는 이유는 뭔가.

“흡연으로 인한 사망은 20~30년 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금 흡연 사망은 과거 20~30년 전 흡연율이 높았을 때의 결과다. 향후 5년 정도 흡연 사망자는 더 늘어나고, 그 이후부터 정체 혹은 감소할 것이다.”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을 보면 암과 심장병이 다른 것 같다.

“흡연으로 인한 암은 20~30년 후 늦게 발현하지만 심장질환은 반응이 빠르다. 담배를 끊으면 혈액 속 일산화탄소량은 하루도 안 돼 정상화된다. 하루라도 빨리 담배를 끊는 것이 좋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올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담배 제조·판매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53.3%로 반대(44.8%) 의견보다 많았다. 담배를 완전히 없애는, ‘탈(脫)담배’를 하는 나라가 있는가.

“아직 세계적으로 그런 나라는 없다. 부탄은 자국에 담배회사가 없어 생산도 판매도 않는다. 그러나 한 예를 들어보자. 한 식품이나 음료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자. 그런데 식약처가 ‘발암물질이 들어 있는데, 국민들 알아서 드세요’라고 한다면 국민이 가만 있을까. 국민들은 ‘식약처가 제정신이냐’ ‘당장 회수해 폐기하라’는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69종의 발암물질이 있는 담배로 인해 한 해 우리나라에서만 6만2000명, 세계적으로 700만명이 죽고 있다. 지금 담배 제조·판매를 금지하는 금연운동이 ‘과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100년 후에는 정부가 그런 발암물질을 계속 팔도록 내버려 뒀던 미개한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담배 제조·매매 금지법안을 제출할 생각이 있는가. 최소한 청원이라도 할 계획은 없는가.

“앞으로 할 것이다. 올해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흡연자마저 담배의 해악을 알고 있지만 끊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담배가 없으면 피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현재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인 서 회장은 ‘담배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일부의 주장에 “의학적으로 흡연자가 더 스트레스가 많다”면서 “담배가 정신건강에 이득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전자담배와 같은 신종담배 역시 ‘백해무익’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특히 전자담배는 100여개가 넘는 제조회사마다 제조방법이 달라 해로움의 변수가 훨씬 많다. 그는 궐련형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의 해로움을 90% 줄였다고 광고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논문을 검토하면 기존 담배의 60~70% 해로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면서 “독약을 물에 타 먹는 격”이라고 말했다.

담배 세수 국가 전체 예산의 2.6%

백해무익한 담배의 제조·판매를 정부가 계속 ‘방치’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재정수입 때문이다. 비중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정부는 담배를 통해 연간 12조원의 세수를 올린다. 올해 예산이 470조원가량이니 담뱃세는 국가 전체 예산의 2.6% 정도를 차지하는 무시 못할 존재다. 특히 2015년 담뱃값을 2000원이나 대폭 올리면서 세수도 크게 늘었다. 서 회장은 “담배로 인해 의료비만 2조원이 나가고, 사망·질병·생산손실·가족의 고통까지 계산하면 거둔 돈 12조원이 거의 다 들어간다”면서 “12조원을 들여 국민 6만2000명을 살릴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 43억갑이던 연간 담배소비량은 2015년 2000원을 인상하자 33억갑으로 줄었으나 다시 늘어나 지금은 36.6억갑을 소비하고 있다.

-담뱃값을 대폭 올릴 때 약속한 정부의 금연정책은 성과가 있는가.

“담뱃값 인상을 주도한 부처가 기획재정부다. 그들은 세수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국민 건강에는 관심 없다. 복지부가 발표한 범정부 금연대책에는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싣고, 소매점 담배광고를 없애겠다고 했다. 담뱃갑 경고그림은 2015년 도입됐지만 소매점 광고 폐지는 지금껏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가 계속 ‘약속을 지키라’고 항의하지만 정부는 ‘알았다’고만 할 뿐 이행하지 않고 있다.”

-소매점 담배광고 폐지가 그리 중요한가.

“매년 흡연으로 6만2000명이 죽는다는 것은 담배회사 입장에서 충성고객 6만2000명을 잃는 것이다. 담배회사는 새로운 고객을 찾는데 그 대상이 청소년들이다. 편의점에서 보면 돈 계산하는 점원 자리 주변이 모두 담배광고다. 조사해보니 편의점당 담배광고가 30개가 넘고, 계속 느는 추세다. KT&G 1년 순익이 8000억원이다. 그 돈으로 편의점 광고, 사회공헌활동이라는 담배회사 이미지 마케팅을 하고 있다.”

서홍관 회장이 담배의 백해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홍관 회장이 담배의 백해무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갑 경고그림 면적을 확대하고 금연지도원 직무범위를 확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9월 28일까지 입법예고 중이다.

“복지부 금연대책에 중요한 두 가지가 빠졌다. 세계적으로 담배광고를 금지하는 나라가 86개국이나 된다. 거의 모든 나라가 금지하고 있는 담배광고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2015년 담배가격 인상 전 우리 담뱃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꼴찌였고 지금은 30위다. 여전히 우리 담뱃값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특히 구매력과 비교하면 국민총생산(GDP) 대비 34개국 중 최하위다. 다른 나라 담뱃값은 평균 1만5000원인데, 우리는 4500원 수준이다. 우리 경제수준에 OECD 평균인 8000원보다 높아야 한다. 복지부 대책에는 담뱃값 인상과 광고 폐지 등 핵심 2개가 빠져 있다.”

서 회장은 195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를 거쳐 1977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 서울대에서 석사·박사(가정의학)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상계>를 구해보던 둘째 형(서태영 변호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둘째 형은 판사 시절인 1985년 운동권 학생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는 판사를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대법원에 항의하는 글을 썼다. 이 사법부 인사파동으로 대한변협은 당시 유태흥 대법원장 사퇴 건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양담배 수입 반대하다 담배 해악 알아

그 역시 대학을 다니며 독서서클과 야학활동을 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다. 그는 1987년 6월항쟁 때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의사 시국선언을 주도하고, 그해 겨울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파야 한다’는 인도주의의사회(인의협)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는 “‘너희들만 인도주의 의사냐’는 비아냥을 참아가며 선·후배를 찾아다니며 인의협 가입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1985년 신경림 선생의 추천으로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등단해 <어여쁜 꽃씨 하나>(창작과비평사), <지금은 깊은 밤인가>(실천문학사), <어머니 알통>(문학동네), <아버지 새가 되시던 날>(지식을만드는지식) 등 시집을 네 권이나 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또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의사로 사는 세상> 등의 수필집을 내고, <경향신문>에 고정칼럼을 쓰기도 했다.

특히 그는 2016년 촛불혁명의 변곡점이 됐던 서울대 의대생들의 대자보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를 보고 <경향신문> 2016년 10월 3일자에 ‘용기 있는’ 글을 썼다. 당시 서울대병원은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숨진 백남기 농민이 지병으로 죽었다는 엉터리 사망진단서를 발부했다. 서 회장은 “잘못된 사망진단서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며 “서울대병원을 책임지고 있는 서창석 원장이 답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그는 “의사가 외압에 못이겨 환자의 기본적인 권리도 보호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국가 중심병원인 서울대병원이 권력기관의 압력에 힘없이 무릎 꿇는 것을 원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일갈했다.

서 회장은 “후배들의 대자보를 보고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칼럼을 써서 일부러 기고했다”면서 “시국도 삼엄했고 같은 공무원 신분이라 더 고민이 깊었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대 의대생의 이 대자보와 이어진 선배 의사들의 ‘답변성’ 지지성명은 꺼져가는 촛불혁명을 다시 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 회장도 12년 동안 담배를 피운 골초였다. 그러나 1988년 한·일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슈퍼 301조를 통해 한국에 미국산 담배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그는 인의협에서 양담배 수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만들다 담배의 해악을 깨닫고 금연운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 인제의대 서울백병원에 금연클리닉을 만들고,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통해 금연운동에 나서다 2010부터 이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다.

서 회장은 2013년부터 동료의사 8명과 함께 ‘갑상선암 과다진단 저지를 위한 의사연대’를 만들어 활동했다. 갑상선암 의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엄청난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 무조건 수술하는 진료패턴이 바뀐 것은 결국 우리가 옳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항일·독립운동사에 매우 해박하다. 직접 러시아 및 중국 시안과 옌안을 답사했고, 올해는 중국 임정 로드를 직접 돌아봤다. 내년에는 하얼빈에 있는 731부대 진열관에서 윤동주의 시 세계를 강의할 계획이다.

의사의 반대에도 인의협을 만든 것이나, 갑상선암 과다진단을 지적한 것,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한 서울대병원을 비판하는 등 그는 의사 사회에서 ‘혁명아’이다. 게다가 저항시를 쓰고 독립투사를 좋아하는 그에게 기자가 ‘저항 내지 혁명가적 기질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그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자는 소신”이라고 단순 명쾌하게 말했다. 기자는 그에게 1930년대 마오쩌둥을 도와 중국 혁명에 기여한 캐나다 출신 의사 ‘노먼 베쑨’을 별명으로 붙여줬다. 이에 그는 “나는 혁명을 한 적이 없다”며 웃었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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