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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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으로 심장이 뛴 적이 언제인가

1876년, 자동차도 없고 라디오나 TV,
영화 다 없던 때였죠
지금은 없는 병들도 많을 때였는데
그때 누가 쓴 이야기를 우린 아직까지 읽어요.
1876년 작은 촌에 살던 한 사람이
이 모든 모험을 적었죠
그 모험들에 숨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에
76년은 75년보다 더 훨씬 좋았어요

[내 인생의 노래]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1876>

‘청소년 시기에 들었던 노래가 사람들의 취향을 결정하며, 그래서 성인이 된 후 들은 음악들은 그다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SNS)에서 공유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는 새로 나온 아이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가보다’라는 감상과 함께….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았다. 나의 애플뮤직 리스트는 중·고등학교 시절 듣던 노래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제아무리 그 이후로 새 앨범을 30장씩 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교복을 입고 30분씩 걸어서 학교에 갈 때 CD플레이어에 넣고 다니며 외우도록 들었던 노래들만이 주로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어린 시절 우리가 가장 싫어했던 그런(뭐? 그런 노래를 듣는다고? 뭘 모르네, 역시 밴드 하면 ○○○가 최고지!라고 말하는) 어른이 될 것이 명명백백해 조금 걱정스럽다.

사실 노래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책이나 영화들 역시 나에게 주는 감흥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는 경험이 적어 새로운 것에는 무조건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일까? 지금보다 감수성이 풍부했을까? 아니면 그저 나이를 먹으면서 너무 많은 노래와 책과 영화를 보고 들어 웬만한 건 ‘어디에서 본 듯한’ 상태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1876>은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라는 뮤지컬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노래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주인공 토마스가 초등학교 시절 독후감 발표 시간에 친구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마구 설레는 마음을 아주 소박하게 들려주는 장면이다.

아이 토마스는 이야기한다. “자동차도 TV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던 시절에 쓰인 이야기가 아직까지 이렇게 재미있다니!”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책으로 탄생한 해가 바로 1876년이기 때문에 76년이 75년보다 훨씬 좋다는 가사에서 코끝이 조금 찡해졌다. 왜인지 모르지만 마음 한편이 조금 콕콕 찔리는 것도 같았다. 얼마나 그 책이 재미있었길래 저자의 머리말이 쓰였던 그해가 그 전해보다 더 좋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일까.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내가 느낀 감정이 부러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 너무 경이로워 심장이 뛰고 뇌가 두근대는 느낌에 잠을 설치는 순간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독후감은 못해도 SNS에 한 줄 감상이라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적이 요 몇 년간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한다거나, 경제력도 자존감도 낮았던 10대와 20대 시절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부러운 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요새 유행하는 “○○○ 안 본 뇌 삽니다”라고 하는 말처럼, 종종 싱싱하고 상쾌한 뇌가 부럽다.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현재의 내가 좀 서운할 것 같아 ‘조금 무뎌진 뇌’의 장점도 있다는 것을 적고 싶다. 예전 같으면 안달복달했을 일이 대수롭지 않아진 점, 동네 개천의 오리를 보고도 주변 사람들에게 한참을 자랑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이런 소박한 노래 가사에 소박하게 고마워하게 되었다는 점.

<현유경 그린피스 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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