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툭하면 화내고 싸우는 ‘분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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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 때문에 언성 높이고 폭발… 상대가 약할수록 강도 더 세져

경찰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하지만 ‘경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르다. 어쩌면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경찰관이 바라본 우리네 삶은 어떤 모습일까. <주간경향>은 현직 경찰관이자 필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원도’의 글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는 경찰의 눈으로 일터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줄 예정이다. 가난은 어떤 모양인지, 죽음의 무게는 얼마인지 등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나는 경찰관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되고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12 신고를 해본 적이 없다. 살면서 누군가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을 휘둘러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자랐고, 그런 사람들만 봐온 나는 어리석게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잡을 때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내가 신고를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든 사람들도 정말 경찰관의 도움이 필요한 급박한 때가 아니면 112에 신고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내가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욕을 퍼부었던 적도 없었으니 모든 사람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파출소가 왜 바쁠까? 사람들은 뭣 때문에 그렇게 싸우지?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웃음이 날 지경이다. 사람들은 정말 별의별 이유로 112에 전화하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파출소에 직접 찾아와 난동을 피운다.

112 전화에 화내고 파출소 난동까지

하루종일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대리기사님이 비를 뚫고 파출소에 들어오시더니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고 하셨다. 나가보니 손님은 분명히 2만3000원에 콜을 불렀는데 일행을 픽업하러 가는 길에 3000원의 추가요금을 요구하는 기사님의 태도에 화가 난 상황이었다. 요금을 올리는 데 한몫한 일행은 대리기사를 향해 “대리기사놈들은 전부 사기꾼이야!”라며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사기꾼이라 생각하면서 왜 대리를 불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당신은 공무원이라 자기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단다. 그렇게 2명의 손님과 대리기사님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3000원 때문에 1시간을 싸우다 갔다. 이 상황에서도 끝까지 존댓말을 쓰며 눈물을 참던 대리기사님의 외침이 빗속에 흩어졌다.

아주머니 한 분이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무섭게 파출소에 들어오시더니, 통장에 분명 5500만원을 넣어 놨는데 오늘 은행에 갔더니 3000만원밖에 없고 2500만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믿을 수 없는 얘기에 통장을 살펴보니 아주머니가 인출했다는 돈은 아직 통장에 얌전히 들어 있었고, 어딘가로 사라진 돈도 없었다. 너무도 간단한 사실이라 어떻게 설명해 드릴 방법도 없는 일이었다. 본인 돈이 아무 이상 없이 통장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데도 아주머니는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해결해달라며 언성을 높였다. 통장에 돈이 있어서 통장에 있다고 대답했는데 왜 통장에 돈이 있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일까.

옆집에 있는 개 두 마리가 너무 시끄럽게 짖는다며 해결해 달라는 전화에 온종일 시달린 적도 있다. 이 민원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경찰관이 가서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 참 난감하다. 버스기사가 자신이 정류장에 있는 걸 봤는데도 태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버스를 타고 뒤쫓아가 다시 그 버스에 탑승한 뒤 기사를 폭행한 사람도 있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교통위반 운전자를 단속할 때는 온갖 욕을 듣는다. “젊은 XX가 늙은 사람 단속해서 복 받겠다”는 소리부터 “눈X을 어디로 뜨고 있느냐”, “내가 누구누구랑 잘 아는 사이인데 사람 잘못 건드렸다”, “네 어미 아비가 위반해도 단속할 거냐” 등등…. 심지어 얼굴이나 옷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법을 어겼고 어긴 현장을 직접 봤기 때문에 단속했을 뿐인데 왠지 단속한 내가 죽을 죄를 지은 사람 같다.

교통위반 단속 때마다 듣는 온갖 욕

여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쫓아다니며 위협하고, 운전을 이상하게 한다고 굳이 그 차를 쫓아가 앞을 가로막은 뒤 내려보라며 운전석을 주먹으로 치고, 전화를 상냥하게 안 받는다고 콜센터 직원에게 욕설을 장맛비처럼 퍼붓고, 길에 주차된 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몽키스패너로 이 차의 유리를 부술 테니 경찰관이 허락해달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저마다 화를 내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분노가 흐르다 못해 넘쳐서, 분노의 파도에 잡아먹힐 것만 같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분노하는가?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분노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봐가면서 분노한다. 분노야말로 철저한 ‘강약약강’의 원리가 적용된다. 아주 동물적인 감각으로 상대방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면 갑자기 신사적인 태도로 바뀐다. 성별을 봐가면서, 상대의 능력을 봐가면서 행하는 범죄에 ‘묻지마 범죄’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태는 한참 잘못됐다. ‘따져보고 범죄’, ‘재보고 범죄’, ‘약해 보이니 공격’ 정도의 타이틀이 적당하다.

그 사람들 눈에 경찰관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민원인들의 분노를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일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라는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정부는 인성교육에 실패한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할 시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한다.

“그러니까 제발 화 좀 그만 내시고 이성적으로 차분히 이야기를 해보세요, 민원인 선생님!”

어떤 노인이 파출소에 전화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윽박지르기에 내가 단칼에 거절했더니 이래서 여자와는 이야기가 안 통한다며 제일 높은 사람을 바꿔 달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파출소 안에 있는 사람 중 내가 계급이 제일 높았다. 그래서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했더니 욕이 두 배로 돌아온다. 왜 믿지 않는 걸까.

지하철을 탔는데 하필 약냉방 칸이었다.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내 인생에도 약냉방 칸처럼 약슬픔 칸, 약좌절 칸이 있었으면.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도 약분노 칸 같은 것이 있어서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식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무엇이 국민을 분노하게 만드는가. 왜 분노해야 할 대상에게 분노하지 않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까. 폭력은 폭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묵인이고 억압일 뿐이다. 시의적절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분노는 누군가의 인생과 감정을 망가뜨릴 뿐이다.

<원도(필명·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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