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기업비대위 회장 정기섭 “개성공단 ‘하겠다’ 미국에 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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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비무장지대(DMZ) 안 오울렛 초소에 올라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저곳이 개성공단”이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북측은 문재인 정부에 “아무 조건 없이 개성공단 공장을 다시 가동해도 좋다”고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재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개성공단은 북한의 4차 핵실험 때에도 가동됐고, 이후 추가된 유엔제재를 우회할 방법도 많았다. 우리가 너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개성공단 재가동은 문재인 정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꼽힌다. 다행히 재개된 북·미회담의 진전에서 우리의 첫 번째 카드는 개성공단 재개가 될 것이 유력하다.

[원희복의 인물탐구]개성공단기업비대위 회장 정기섭 “개성공단 ‘하겠다’ 미국에 말해야”

지난 6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정기섭 개성공단기업비대위 회장과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 등이 미국을 방문해 개성공단 재개를 ‘설득’하고 ‘호소’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통일부 산하기관이고, 개성공단기업비대위는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160여개 기업의 모임이다. 의료업체 ㈜에스엔지 정기섭 대표(67)는 2016년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지내고 올해 다시 만들어진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 위원회장에 선임됐다.

미국 방문 개성공단 재개 ‘설득’

-이번에 미국 정계에 개성공단 재개를 설득하기 위해 가서 누구누구를 만났나.

“미 의회 아·태소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성공단 설명회를 가졌고, 미 국무부 국장과 소속 직원을 만났다. 그리고 미국 ‘38노스’와 관계하는 몇몇 싱크탱크 관계자와 간담회를 했다. 워싱턴 민주평통과 한인 민주포럼에서 개성공단 관련 간담회 겸 토크쇼를 했다.”(그는 미국에서의 일정과 대화내용을 적은 노트를 꺼내 보며 설명했다.)

-임금으로 지급되는 달러의 투명성만 확보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반응도 보도됐다.

“미 의회에서는 북의 비핵화 과정 중 첫 단계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싱크탱크들은 개성공단 임금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전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관심이 있더라.”

-미국 조야의 사람들은 여전히 개성공단이 북의 ‘벌크캐시’라고 인식하고 있는가.

“이들조차 개성공단 규모가 얼마이고, 임금총액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월급이 170~180달러였고, 그 전에는 훨씬 적었다. 11년간 북에 들어간 임금이 5억5000만 달러밖에 안 된다. 그도 절반은 초코파이와 비누·라면 같은 물자로 지원됐다. 개성공단 임금이 핵개발에 전용될 수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북한의 달러 수입원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그 점을 집중 설명했다.”

-국내 사업문제를 이렇게 미국까지 가서 설득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다는 생각은 안 했나.

“많이 했다. 사실 이번에 미국을 즐거운 마음으로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동안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개성공단을 닫았으니 문재인 정부가 알아서 열어주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니 우리 정부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보이더라.”

개성공단은 문재인 정부의 자존심

개성공단에 대해 꼭 미국의 조야만 모를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개성공단은 통일부에서 주관하지만 미국이 개입하면 외교부 소관이 된다”면서 “그런데 우리 외교부 관료들이 개성공단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모르니 개성공단이 가진 잠재적 평화의 가치나 미래의 경제 가치까지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공무원이 그럴진대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다. 김진향 이사장이 전국을 돌며 개성공단 알리기를 계속하지만 많은 국민은 여전히 개성공단을 잘 모른다. 특히 태극기를 들고 광장을 서성이는 사람 대부분은 개성공단을 ‘대북 퍼주기’나 ‘북핵 자금줄’로 생각한다. 이는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에 대해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북한의 핵무기, 장거리미사일 고도화에 쓰였다”고 반복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앞서 얘기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자존심이자 역점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2월 28일 ‘하노이 노딜’ 직후 3·1절 기념사에서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미국이 반대하자 우리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소심한 통일부 장관으로 평가받던 조명균 장관이 경질되고 김연철 장관이 왔다. 그는 통일부 과장급 54%를 교체하는 등 복지부동에 젖은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북에 쌀을 지원하고, 개성공단 기업인이 오래전부터 요구하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투자한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9번이나 공단 방문을 정부에 요청했지만 매번 불허했다. 신임 통일부 장관의 허용 발표에 기업인은 다시 희망을 가졌다.

-통일부가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기자설명회를 하면서 ‘개성공단 재개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해 일이 꼬여버렸다. 언제 기업인 방북이 이뤄지나.

“대변인이 ‘이번 기업인 방북이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에둘러 말해도 되는데, 굳이 ‘개성공단 재개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북측이 ‘그럼 뭐하러 와서 점검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북측은 ‘기업인 방북은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면 남이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정기섭 회장과 김진향 이사장 등이 6월 14일 워싱턴의 미 국무부를 방문해 마크 내퍼 전 주한 미 대사대리를 만나고 있다.

정기섭 회장과 김진향 이사장 등이 6월 14일 워싱턴의 미 국무부를 방문해 마크 내퍼 전 주한 미 대사대리를 만나고 있다.

-이에 정부 입장은 뭔가. 역시 미국의 ‘승낙’을 기다리는 어정쩡한 입장인가.

“당연히 ‘한다’고 해야 한다. 최소한 ‘미국을 최대한 설득해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 말도 못하나.”

-국내 일부 언론은 북측이 개성공단 설비를 철거해 개성 외 지역으로 옮겨 중국 수출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가짜뉴스로 드러났다.

“웃기는 얘기다. 북에는 개성공단 외에 봉제공장이 많고 기계도 있다. 단지 전기 사정이 여의치 않고 오히려 일감이 부족해 기계를 못돌릴 뿐이다. 한 극우매체의 무책임한 보도를 국내 유력 언론이 모두 받아 옮겼다. 그게 가짜뉴스인 줄 우리 통일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며칠 동안 아무런 해명도 안 했다. 북측에서 이것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만약 개성공단 재가동이 결정되면 곧장 생산이 가능한가. 물론 기계설비에 대한 점검은 필요하겠지만.

“3년 4개월 동안 운전하지 않은 기계라 가동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자제어장치가 들어간 기계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배관은 모두 교체해야 할 것이다. 겨울을 세 번 나는 동안 난방을 하지 않아 모두 망가졌을 것이다.”

-시설이야 수리·교체하면 되지만 당시 숙련된 노동자를 다시 모을 수 있을까.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이 걱정하는 것이 그 부분이다. 원래 일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가 의문이고 걱정이다.”

개성공단은 2000년 남북의 첫 정상회담인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2003년 6월에 착공했다. 원래 이 지역은 북한군 2개 사단과 1개 여단이 있던 군사요충지였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부대를 15㎞ 후방으로 철수시키고 공단을 조성했다. 개성공단은 당초 10년간 3단계로 공단 800만평(26㎢), 배후도시 1200만평(40㎢) 등 2000만평(66㎢) 규모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추가나 신규 투자 허가를 내주지 않아 1단계 100만평만 조성됐고, 이도 42%만 공장이 입주해 있다.

폐쇄로 인한 피해는 1조5000억원 이상

개성공단은 폐쇄되기 직전까지 124개 회사에 북측 노동자 5만4000여명이 일했다. 개성공단은 저렴한 인건비(1인당 141.4달러, 베트남 193달러, 중국 659달러)와 높은 생산성(남한 100 기준 개성공단 77, 중국 69)으로 연간 32억3000만 달러의 생산실적을 올렸다. 정 회장은 “우선 말이 통하고, 이직률이 적어 숙련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김진향 이사장은 “개성공단은 1을 투자해 30을 벌어온 퍼주기가 아닌 퍼오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됐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에도 11년간 유지됐던 개성공단은 2월 7일 북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문을 닫은 것이다.

정기섭 회장이 개성공단 지도에서 자신의 공장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정기섭 회장이 개성공단 지도에서 자신의 공장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현행 남북교류협력법에 ‘국가 안전보장을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심의·의결로 청문절차를 거쳐 사업을 중단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런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현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회에서 ‘통치행위’라고 강변했지만, 민간이 입은 손실을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무마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조사 결과 개성공단 폐쇄는 박근혜의 독단적 판단과 지시로 드러났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절차의 위법성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2016년 5월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개성공단을 폐쇄해 민간에게 피해를 준 것은 직권남용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헌재는 지금껏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헌재는 통치행위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했으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정 회장은 “법적으로만 판단하면 벌써 결정이 나와야 했는데 헌재가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폐쇄로 기업인이 입은 피해는 1조5000억원 이상이라는 것이 기업 측 주장이다. 정부는 피해액을 보상했다고 주장하지만 기업인들은 “내가 낸 남북경협보험금을 받은 것밖에 없다”면서 “공장 가동을 못해 입은 손실과 영업권 손실 등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195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대전중·고를 나와 73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부친이 3대 국회의원을 지내 그도 정치에 뜻을 가졌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직선 총학생회장이던 그는 4·19 학생혁명 기념식에 김대중·고은을 초청했다. 결국 5·18이 터지고 그는 계엄사로 끌려갔다. 그는 두 달여 만에 불기소처분으로 나왔지만 학교에서 제적됐다.(1986년 대학 졸업장은 받았다.)

제적생으로 취업이 어렵던 그는 1981년 ㈜SNG를 설립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사업이 잘돼 종업원이 230명까지 늘었다. 한때 열린우리당 당협위원장을 잠깐 맡은 적이 있어 정치에 뜻이 있는 인물이라는 소문도 났다. 그러나 그는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박병석 의원을 돕기 위해 잠깐 맡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2014년 3월 2년 임기의 개성공단기업인협회장을 맡았다가 올 3월 다시 비대위원회장에 선출됐다. 그는 “주체적으로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맡았다”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떼밀려 다시 맡았다’고 한다. 그는 개성공단에 대해 잘못 알려진 대목이 많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우리가 많은 것을 잃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북한을 꼭 극복 대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전쟁하면 양쪽 모두 망하고, 교류·협력하면 좋은 점이 많다. 통일은 긴 과정의 결과물이다. 서로 상생·화합하다 양측 국민이 이심전심 ‘이제 합치자’는 공감대가 이뤄지면 그때 통일하면 된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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