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교사는 행정업무와 이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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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행정에 포위돼 정작 본업인 수업에 대한 고민 잊고 살아

2년차 원어민 교사인 메건이 울고 있었다. 자신이 준비한 수업이 아이들에게 잘 안 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이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 번은 메건이 월요일 오전 8시쯤 출근한 것을 보고 “왜 이리 일찍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주말에 못한 수업 준비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깊이 반성했다. 교직인생에서 행정업무나 생활지도 때문에 속상한 적은 있었지만 수업에 대한 고민으로 눈물 흘릴 정도로 상심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메건처럼 절실하게 수업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수업을 잘해서가 아니라 교사가 해야 할 일을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왜 자신의 가장 큰 임무인 수업을 잊으며 살아갈까. 초등학교에서 교과 전담교사는 한 과목만 가르치기 때문에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적다. 하지만 대신 전담교사는 보직교사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수업시수가 적거나 가르칠 과목이 적기 때문에 행정업무를 그만큼 더 맡게 되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담임교사대로 정신이 없다. 가르쳐야 할 과목이 많고, 직접 담당해야 할 아이들이 많고, 학부모들과도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임교사들도 많지는 않지만 행정업무가 부여되어 있다. 특히 시골 학교로 가면 비보직 담임교사라도 도시 학교의 보직교사만큼 행정업무를 해야 한다. 심지어 시골학교의 경우 주당 수업시간보다 주당 행정업무에 투자하는 시간이 더 많은 교사들도 있다. 도교육청에서 학교로 발송하는 공문의 총량은 도시 학교와 시골 학교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수가 적은 시골 학교 교사들은 엄청난 행정업무에 파묻혀 살고 있다.

법령 생기면 늘어나는 행정업무

왜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행정업무에 포위되었을까. 일단 교육과 관련한 각종 법령이 생기면 여지없이 행정업무가 늘어난다.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자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학교폭력 담당 부장이 생기고 그에 따르는 복잡한 행정업무가 늘어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안전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국민 안전교육 진흥 기본법’이 생겼다. 안전교육 담당자가 생기고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안전에 관련된 시수가 배정됐다. 안전에 대한 행정업무가 급격히 늘어났다.

진로교육이 이슈가 되자 ‘진로교육법’이 생기고 진로에 관한 연수와 행정업무가 증가했다. 아이들의 인성 함양을 위한 ‘인성교육진흥법’이 만들어지니 인성 담당교사가 생기고 인성업무가 신설됐다. 심지어 방과 후 업무는 근거가 되는 법령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행정업무를 가장 많이 담당하는 방과 후 담당 교사를 양산했다.

이슈가 생기면 여지없이 법령이 생기고 그게 학교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 실무를 교사들이 맡는다. 교사 수는 변하지 않는데 행정업무량만 급격히 늘다보니 이제 대한민국 학교는 행정업무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혀 있는 신세가 됐다. 그래서 교사 자체도 본인들이 교사인지 아니면 행정직 공무원인지 정체성이 헷갈릴 정도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업무를 어떻게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일부 교육청에서 담임 업무 제로화를 시작하면서 업무전담팀이 생겼다. 취지는 담임교사에게 수업 준비할 시간을 확보해주고 생활지도를 할 시간과 학생 상담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업무전담팀의 효과가 업무 폭탄 돌리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보통 업무전담팀에 들어가면 전담교사들은 수업을 조금하고 그 대신 담임이 해야 할 행정업무를 맡게 된다. 그러다보니 업무전담팀 교사들은 행정업무로 힘들게 되고 담임들은 수업시수가 늘어난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예전처럼 수업을 덜하고 행정업무를 조금 더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담임교사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안으로 최근에는 역할주의에 입각해서 교감과 교장도 적극적으로 행정실무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즉 교사는 수업, 생활지도와 상담에 주력하고, 교감·교장은 교육행정업무를 해야 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최근의 교감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행정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소수 교장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학생상담이나 행정실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교감·교장의 역할주의론이 더 확산되면 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행정업무 부담을 분담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솔선수범하는 일부 교감·교장에게만 행정업무를 전가하는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행정실과의 분명한 업무 조정 필요

결국은 행정실과의 분명한 업무 조정이 있어야 한다. 일부 지역 학교에서는 폐쇄회로TV(CCTV) 관리나 소방훈련같이 행정실에서 담당해야 할 업무를 교사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분장표에 있는 업무를 분석해 행정실에서 처리해야 할 만한 업무는 행정지침으로 분명하게 명시해 교사들이 행정실 업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업무 조정을 하더라도 교사 업무 정상화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학교에 들어온 행정업무의 절대적 총량이 많기 때문이다. 행정업무를 양산하는 법령이 생길 때마다 행정인력을 충원하는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 행정업무의 성격이 짙은 방과 후 업무나 돌봄 업무는 지방자치단체가 솔선해 맡는 움직임도 필요하다. 실제로 일부 구청들은 마을학교를 직접 개설해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는 학교 시설만 빌려주고 방과 후 학교에 관한 운영은 지자체가 맡는다면 교사들이 행정업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성공했던 학교생활기록부 간소화 전략처럼 학교에 들어온 행정업무를 분석해 통·폐합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뒤 교사 행정업무를 최적화할 수 있는 각종 연구는 지속돼야 한다. 그리고 행정을 위한 행정이 무엇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서 세밀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교사의 행정업무가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무실에는 교무행정을 전담하고, 교육과정을 지원해줄 수 있는 인력을 충원해 현재 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대외문서 발송과 품의를 전담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대외문서 발송과 품의만 하지 않아도 많은 시간을 교육 연구에 할애할 수 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처럼 담임교사는 자신의 학급에 관한 가정통신문이나 교육활동 정도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게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필자도 메건처럼 수업 때문에 속상해 울고 싶다. 그가 열중하듯 수업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 아이들과 마주보고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행정업무와 과감하게 멀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쩌면 대한민국 교사 업무 정상화일지도 모른다.

<정재석 전북 고창초등학교 교사(실천교사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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