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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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신뢰와 배움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아이들이 사랑스런 사람으로 성장

나이 차가 많은 세 아이의 엄마로 살다보니 대한민국 교육의 모든 영역을 피부로 느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3년 전 일이다. 막내는 어린이집, 둘째는 초등학생, 큰아이는 중학생, 엄마인 나는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시절 머릿속을 헤집었던 생각이 ‘복지란 무엇인가’ ‘국가는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그 본질적인 고민과 회의가 가장 복잡다단하게 떠올랐다. 그럼에도 일상은 일상일 뿐, 거대한 고민은 남편의 지원으로 해결되는 게 최고의 복지였다. 남편이 오전에 집안일을 한 뒤 출근하고, 퇴근하자마자 부엌에 들어가는 상황으로 변화했다. 결국 최고의 복지는 남편의 가사분담이 첫 번째였던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나는 고등학교 교사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힘을 쏟아야 했고, 나의 세 자녀는 선생님들께 맡긴 채 그분들의 고군분투를 응원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역부족. 방치된 어린 막내는 애정결핍,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라는 과제가 남았다. 저녁 해 질 무렵이면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쉬게 하자는 엄마로서의 양육원칙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느긋한 저녁시간을 누리는 것이 과욕이라는 것을 느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엄마교사로 과부하인 고3 담임의 1년

다양한 역할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교사로서의 삶에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것이 당연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 아이 엄마로서 가사와 병행하는 가운데 수업준비는 주로 새벽녘에 이루어졌다. 매일 오후 5시에 수업이 끝난 후 3학년 상담이나 진로·진학 관련 업무 및 학생들 지도를 하다보면 보통 오후 6시 이후 퇴근이거나 여차하면 9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시험 출제기간이었다.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얼마나 배우고 성장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1등급 학생이 변별되는 문제를 낼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 학부모를 빙자한 주변 학원의 민원을 받지 않는 문제를 내는 것도 관건이었다. 동료교사들과 의욕적으로 각종 시도를 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복합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를 내기라도 하면 그 논의시간 자체가 한 문제에 2~3시간이 훌쩍 소요되는 고된 노동이다.

부모들은 교사들에게 모든 입시정보가 주입돼 있는 것처럼 알지만 그것은 엄청난 고군분투의 결과물이다. 교사들도 발품을 팔아 입시설명회를 다니고, 주말에 조를 짜 다양한 연수에 참여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의 입시 결과를 파악하고, 변화하는 입시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발품과 연구가 객관적 지식이라면, 이후 과정은 학생들 개별 성향과 진로와 관련된 개인적 요구와 성적 추이, 적성을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담, 입시, 진로 지도 등의 종합적 과정을 거치면서 고3 담임의 1년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순간 엄마교사로서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과부하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교사라는 이 일이 적성에 맞고 늘 즐겁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과부하를 이겨내고 정년까지 이 에너지를 학생들에게 다 쏟아붓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 엄마교사의 삶이 녹록하지 않다고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과 함께 어깨 겯고 걸어야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기에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알려드리고 싶다.

첫째, 가정에서 ‘신뢰’를 가르쳐 주셨으면 한다. 교사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되는 학생은 첫 만남부터 교사와 학교를 불신해 학원 문제집을 펼치거나, 인강을 들어도 되냐고 묻는 학생들이다.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학원과 학교의 이중생활에 익숙하게 자라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길었던 학생들인 경우이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마음 가득 준비해온 나의 애정은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하게 된다. 삶의 영역에서 만나온 모든 선생님들, 학습지 선생님, 악기 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 학원 선생님, 셔틀버스 선생님 등 모든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에 있는 선생님을 신뢰하는 자세가 몸에 배도록 반복해서 알려주셨으면 한다. 모든 관계의 기초는 신뢰이다. 3월이면 늘 처음 만난 학생들이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마음의 밭을 말랑말랑하게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꽤나 고되다. 교사 개인이 힘겹게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신뢰기반의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해마다 3월이면 생각하곤 한다.

둘째, 모든 ‘배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가정에서 반드시 가져야 한다. 단순히 숙제를 지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매일 부모님의 격려와 지지를 받는 것이다. 마치 콩나물에 물을 주듯 부모님의 따뜻한 어루만짐의 마음이 아이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애착이며 회복탄력성이고, 자존감의 근원인 것이다. 그런 상호작용의 결과가 쌓여야 고3이 되어 진로로 고민하는 시기에 자신있게 자녀의 개별성에 근거한 인생 선배의 역할을 감당하실 수 있을 것이다. 고3 상담시간에 성적과 관계없이 학부모가 학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하실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 모이는 모든 곳에 희망 있어야

부모들로서는 경험의 한계로 인해 아이를 학원에 맡겨놓는 것이 최고의 교육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남들보다 1점 더 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교육기관의 교육이 아닌,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갖는 ‘기초공사’에 신경을 써주셨으면 한다. 배움의 기초공사는 단단한 마음과 자부심이다. 문제풀이 학원보다는 복습을 통해 그날의 공부를 돌아보고 글쓰기를 통해 내적 성찰을 하는 학원, 독서를 통해 학생의 삶을 지지하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의 단단함과 배움의 기쁨을 유지하는 사교육기관도 찾아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나 사회나 현실은 어디서건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게 점점 더 노골화되어가고 있다. 그로 인한 차이는 멸시와 조롱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폭력은 병균처럼 일상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관대함과 남에 대한 포용과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신다면 아이들도 다시 회복의 관계로 돌아설 것이라고 믿는다. 교실은 더 메마르고, 학교는 날로 삭막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학생들을 내 아이처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정과 사회에 퍼져나간다면 학교든 학원이든 아이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교사로서 필자는 모든 학생이 사랑스럽다. 그 학생들이 최소한의 바른 태도와 배움의 자세가 준비돼 있으면 더 많은 성장을 끌어낼 수 있겠다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다. 어디서부터 그 뿌리를 캐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은 학생들의 마음이 황폐하고 푸석하게 메마른 땅 같아서 관계의 물꼬를 트기가 늘 버겁다. 우리의 아이들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랑스런 사람으로, 배움을 지속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이 사회가 함께 힘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학벌과 학력을 향한 맹목적 코스를 벗어나 또 다른 나의 동료인 엄마들이 다른 아이들도 내 자녀처럼 여기고 사랑해주길 바란다. 각자 자기 몫의 사랑에 최선을 다할 때 모든 엄마도, 아이들도 행복한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함은희 경기 용인 신봉고 교사(실천교사 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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