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지구-위기의 인류는 꼭 태양계를 떠나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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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에서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2000)가 약 8000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반면 해외의 반응은 중국굴기에 영합한 신파조 영화라 치부하는 분위기다. 인류의 대재난을 가족의 해체와 재통합이란 공식과 한데 엮어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플롯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허나 이런저런 약점이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하드SF 작가 류츠신(劉慈欣)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한 영화답게 스케일이 대단하고 이를 영상화한 CGI가 일품이라 볼거리가 있긴 하다. 사실 류츠신은 2015년 <삼체(三體)>로 휴고상을 탔을 만큼 영미권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다.

류츠신의 <유랑지구> 원서 표지 / 長江文藝出版社

류츠신의 <유랑지구> 원서 표지 / 長江文藝出版社

그러나 <유랑지구> 영화판은 이야기 전개상 아쉬운 점들이 몇 군데 있어 짚어본다. 태양이 폭발을 앞둔 이상 조짐을 보이는 이야기는 영미과학소설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심지어 행성을 통째로 다른 성계로 옮긴다는 발상조차 류츠신이 처음은 아니다. 래리 니븐의 <알려진 우주 시리즈>에서 외계 종족 퍼펫티어인들은 초신성 폭발을 피해 자기네 행성을 은하계 외곽으로 피신시킨다. 다만 류츠신은 이동시킬 행성을 지구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유랑지구> 쪽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21세기 후반이 무대이니만큼 일단 영화 속 과학기술이 모두 가능하다고 전제해보자. 문제는 해당 기술의 구현 가능성이 아니라 이를 세상에 적용하는 방식의 현실성이다. 영화 속의 지구는 자전을 멈추고 한쪽 반구가 거대 분사장치들로 뒤덮인다. 그리고는 4.3광년 떨어진 또 다른 태양계인 알파 센타우리로 나아가다 목성의 인력에 붙들려 먹힐 뻔한다. 그런데 설사 지구를 멈출 수 있다 한들 그 후폭풍(지진과 쓰나미)으로 인류의 태반이 죽어나갈 수밖에 없고 오직 일부만 지하도시로 대피할 수 있다면 어떤 정부가 이런 구상을 강행할까?

또한 1만개나 되는 분사장치를 뿜어대도 목적지까지 2000년이 걸린다면 지하로 달아난 35억명의 생존자들을 위한 생태계를 어찌 마련할까? 지구라는 덩치를 광속의 0.5%로 가속할 수 있기는 할까? 목성의 궤도와 수직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신 미 항공우주국(NASA) 탐사선들이 애용하는 플라이바이 항법을 썼다면 중력간섭을 받을 일도 없고 외려 공짜로 가속력을 얻을 수 있었건만 왜 그러지 않았을까? 설사 목적지에 다다른다 한들 거기에도 이미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행성들이 있을 테고 그 중 지구가 필요한 골디락스 존에 있는 기존 행성은 어떻게 밀어낼 텐가? H. G. 웰즈는 일찍이 <별>에서 불청객 외계행성이 태양계에 뛰어드는 통에 기존 행성들이 갈팡질팡하다 괴멸하는 악몽을 그리지 않았던가.

실은 이보다 안전하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자전을 억지로 멈춰 세상을 요동치게 하는 대신 지구 상공에 인공태양을 하나 또는 여럿 띄우면 된다. 달을 작은 태양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럼 경천동지할 쓰나미도 없고 지하에 들어갈 일도 없다. 대기와 지상의 온도는 예전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무턱대고 알파 센타우리까지 갈 일도 아니다. 태양은 주계열성이라 괴멸적인 파국을 맞이하지 않는다. 차라리 명왕성 너머 외곽에서 태양의 변덕이 수그러들길 기다렸다 다시 원래 궤도로 돌아오는 편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랑지구>는 극적 긴장과 위기의식을 더하고자 굳이 위험한 길을 고집한다. 허나 현실은 설사 그런 기술력이 있더라도 영화와 같은 선택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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