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구를 위한 NEIS인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학생·교사·학부모 편의가 아닌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여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교육부에서는 독일어도 아닌 것을 엉뚱하게 ‘나이스’라고 읽는다. 사실 이렇게 부르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NEIS는 2003년 ‘학교와 교육청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교무·학사·인사·회계 등 교육행정을 전자적으로 처리하여 교육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목적으로 전면 도입·시행됐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그런데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개인정보의 과다 집적 등을 문제삼은 전교조 등의 강한 반발 때문에 참여정부 첫 교육장관인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낙마하는 우여곡절이 벌어졌다. 급속한 전면 시행에 따른 잦은 오류와 원시적인 인터페이스 등으로 현장 교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NEIS는 자주 ‘뻑’이 났고, 그때마다 학교는 올스톱 되거나 두세 번씩 다시 작업해야 했다.

시수와 편제와 발이 묶인 교사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이 NEIS를 발음법에 따라 ‘네이즈’라고도 부른다. 국적 불명의 ‘나이스’라는 말은 현장 교사들의 불만을 경청해 해결하기보다는 ‘NEIS는 ‘나이스한(좋은) 것’이라는 다분히 주술적 취지가 담긴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종 행정력을 동원해(예컨대 공문서 및 연수에 NEIS 명칭 쓰기) 현장의 정서를 조작 또는 억압하고자 했다.

그 뒤로 16년이 지났다. 시스템은 조금씩 안정됐다. 나름 보완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완의 기준이 2003년 당시의 기술력과 교육환경의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스템의 철학 즉,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스템인가에 대한 물음이 없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분명 NEIS 도입으로 학교에서는 이전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량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보처리 능력이 학생과 교육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적 관리와 통제를 위해 쓰이도록 설계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육과정 시수’다.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학생이 진로교육을 내실 있게 받으면 되는 것이지 진로시간의 시수가 학기당 17시간인지 18시간인지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나아가 진로수업이 ‘창의적 체험활동(자율·동아리·봉사·진로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 ‘자유학기제(진로·주제선택·예술체육·동아리 4개 영역)’의 진로수업인지까지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 NEIS라는 전산화된 문명의 이기는 그 불필요한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했고, 교사들이 시수와 편제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해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교사들은 새 학기 준비의 상당 부분을 교과연구 혹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을 준비가 아닌 서류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쏟는다.

학기 중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기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NEIS 시스템 상에서 시수가 자동 계산되도록 한 뒤 (정확히는 수기로 입력하지 못하게 막아) 사소한 시수 오류라도 있으면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가 없게 차단해놓고 있다. 한 학생이 독감에 걸려 조퇴를 했을 경우 자율활동을 8시간 한 것과 9시간 한 것의 차이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만큼의 학교 행정력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발생한다.

이렇듯 NEIS 시스템의 운영목적이 사실상 이용자(교사·학생·학부모)의 편의가 아니고 관리와 통제의 편의이다보니, 정작 전산화로 혁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학교업무 프로세스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종이로 하던 작업을 이제 컴퓨터로 하게끔 만들었을 뿐이다. 예컨대 학교에 연간 1만건이 넘게 쏟아지는 공문 중 그 흔한 답글 기능조차 없어 새로 공문을 작성할 때면 일일이 근거 공문 번호를 찾고 수신처를 찾아 입력해야 하는 실정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교사의 일상

학생과 학부모들도 전산화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학생의 출석을 인정해 주는 체험학습 보고서는 종이신고서로 처리해야 한다. 학부모는 PC방에 가서라도 사진을 출력해 붙여 문서를 만들어 보내야 하고, 아이가 깜빡해서 제출기한을 놓치기라도 하면 인정 여부를 학교와 다퉈야 한다.

교사는 교사대로 그 서류를 추려 결재를 받아 문서철을 만든 다음, NEIS 출결사항 메뉴에 입력해야 한다. 종이로 할 때보다 오히려 한 단계 더(?) 일을 하는 셈이다. 학부모가 업로드해 승인되면 시스템에 자동으로 반영되는 방식이 아니다. 방과 후 학교 신청이나 성적 확인, 고교 입시원서 제출, 건강검진 결과 수합 등 거의 모든 일들의 프로세스가 대동소이하다. 다만 상급기관에서 출석률이 몇 %인지, 비만학생 비율이 몇 %인지 한눈에 파악해 보고하기가 좋아졌을 뿐이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개선 요구가 있어도 NEIS를 관장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늘 ‘갑’인 교육부의 의견을 우선한다.

NEIS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실질적 업무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오히려 교사들은 학생이 아닌 컴퓨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교사의 일상을 학생이나 책이 아닌 컴퓨터가 지배하게 된 셈이다. 학교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도입된 NEIS가 도리어 학교의 교육력을 갉아먹는 비효율과 역설을 야기하게 됐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정보화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NEIS 도입 당시의 취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교육관료를 위한, 교육관료에 의한, 교육관료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그 도입 취지를 되살리고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현재의 상황에 맞도록 개편하는 전면적인 재설계 및 혁신이 절실하다.

먼저 업무 프로세스를 현 실정에 맞게 재구축해 ‘관리의 편리’가 아닌 ‘업무의 편리’를 꾀해야 한다. 대신 교사들은 미래형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관점 전환도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관’이 아니라 ‘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스템으로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학생부 기재내용은 아니지만 학생에게는 의미 있는 진로검사 결과나 도서대출 이력 같은 것도 연결하고, 초·중·고를 연계해 성장의 이력을 살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를 집적·관리하며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LOD(링크오픈데이터 연결)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정보보호나 보안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IT 강국이고, 교육열도 높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기득권 유지를 위한 관료들의 규제에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게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위한 변화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신동하 교사(경기교육연구소 연구실장·실천교사 정책위원)>

대한민국 교육 제대로 가고 있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