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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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저주하고 심판자가 된 살인마

<열세 번째 배심원>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재판을 유죄로 끝내려는 케인과 단순한 치정사건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의 이면을 꿰뚫어보며 무죄의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플린의 대결이다.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스티브 캐버나의 <열세 번째 배심원> 한국어판 표지 / 북로드

전직 사기꾼인 변호사 ‘에디 플린’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열세 번째 배심원>은 기묘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우편배달차에 침입해 법원 소환장을 훔쳐본 케인은 한 남자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으로 위장한다. 죽은 남자는 배심원으로 소환되었고, 케인의 목표는 배심원이 되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인 바비 솔로몬이 부인 아리엘라 블룸과 경호원 칼 도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

에디 플린은 유명 변호사인 루디 카프를 만난다. 바비 솔로몬의 재판에 차석 변호인으로 참여해 달라는 것. 플린의 조건은 하나다. 바비가 무죄일 때에만 참여한다. 플린에게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다. “돈 문제가 아닙니다. 난 죄인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오래전에 그런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있어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대가가 비쌌죠.” 플린은 법정에서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다. 이기기 위해 작은 속임수를 쓰는 경우는 많지만, 정의라는 목표가 있기에 가능한 수단이다.

<열세 번째 배심원>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재판을 유죄로 끝내려는 케인과 단순한 치정사건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의 이면을 꿰뚫어보며 무죄의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플린의 대결이다. 그러나 케인과 플린의 대결은 단순히 법정에서의 치열한 공방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케인은 은밀한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연쇄살인을 저질러왔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해했고,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어머니까지 죽인 후 결심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행운을 잡을 수 있고, 열심히 하면 바닥에서 최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파괴하기로. 케인이 보기에 아메리칸 드림은 추악한 거짓말이었다. 그는 사회를 저주하고, 자신이 심판자가 되기를 원했다. “열심히 일해서 또는 행운을 잡아서 그것을 이뤄낼 사람들(…)을 고통받게 할 것이다. 그 꿈에 생명력을 준 것에 대해.” 극적인 무엇으로 삶을 바꾼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누명을 씌운다. 아메리칸 드림이 파괴되고, 형무소에서 헛된 욕망을 반성하도록.

하지만 아무도 케인이 행한 일을, 이유를 모른다면 의미가 없다. 케인의 연쇄살인과 이유, 목적을 알아낸 것은 플린이 처음이었다. 케인은 드디어 자신의 위업을 드러낼 수 있다는 희열과 감옥에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케인과 플린은 숙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법정 안에서 플린은 최고의 기술을 지닌 전사이지만 밖으로 나오면 케인은 그야말로 무적이 된다. 정체가 드러난 후에도 케인은 압도적으로 방해물들을 제거한다. 한니발 못지않게 압도적인 악역 캐릭터다.

<열세 번째 배심원>은 강력한 스릴러다.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 플린과 케인의 놀라운 발상과 행동력, 그들 각자에게 닥치는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린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옳은 일을 해야죠…. 제가 넘어진다면, 누군가 나타나서 제 자리를 가져가야겠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오래 서 있으면 됩니다.” 현재도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스티브 캐버나가 만들어낸 플린의 과거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올곧은 신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자를 지키려 하는 것일까. 전작들이 정말 궁금하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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