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방황 <철가방 추적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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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비트의 음악과 함께 막이 오르면, 단정히 차려입은 중년의 여교사가 햄버거를 배달 중인 남학생을 맹렬히 쫓기 시작한다. 배달부는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무대 끝까지 쫓아온 교사에게 결국 배달통을 뺏기고 만다. 김윤영의 단편소설을 박찬규가 각색하고 신명민이 연출한 연극 <철가방 추적작전>은 이렇듯 제목 그대로, ‘철가방’을 들고 배달 중인 알바생을 쫓는 교사, 나아가 그를 통해 무단결석 중인 자기반 학생 정훈이의 행방을 추적하려는 열혈교사 봉순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처음엔 단순히 출석일수를 채워 정훈이를 무사히 졸업시키려는 의도로 시작된 추격이지만, 그 과정에서 봉순자는 정훈이의 가출과 그 또래 친구들의 방황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차별과 적대감, 그리고 불공정한 경쟁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임대아파트와 민간아파트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중학교에서 이들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수업을 듣지만, 그들의 학교생활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단지 생활만 동등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공정하지 않다. 학교에서 고가의 물품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것은 늘 임대아파트 아이이고, 친구들끼리 치고받고 싸웠을 때도 임대아파트 아이는 ‘문제아’로 찍혀 더 중한 벌을 받는다. 정훈이와 희찬이가 중국집 주방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설거지를 할지언정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봉순자는 아이들에게 제발 졸업만이라도 무사히 마치라고, 중졸도 아닌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냐며 다그치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에게 ‘졸업장이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느냐’고 되묻는다. 그러한 기존의 교육제도 안에서 공부를 통해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 여러 사례를 보아온 봉순자는 이들에게도 희망의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교육현장에도 깊숙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공의 선(善)’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지만 그 시스템 자체가 ‘선’의 기능을 잃어버렸을 때, 시스템 내부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연극 <철가방 추적작전>의 임대아파트 친구들은 학교라는 시스템에 남아 발버둥치는 대신에, 시스템 밖으로 탈주하기를 선택했다. 작품은 이들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을 둘러싼 상황을 차근차근 풀어냄으로써, 여전히 시스템 안쪽에 남아있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봉 선생은 정훈이를 어떻게든 졸업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전에 그가 돈을 훔쳤다고 의심받았을 때 굳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고, 이제는 그 일을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 역시 암묵적으로는 정훈이가 범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차별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5월 4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에서 공연된다.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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