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 돌아온 <여명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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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앞에서 여옥과 대치는 작별의 키스를 나눈다. 이제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절체절명의 이별 장면은 TV 시청자들을 하염없이 눈물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9년 그 이야기는 무대로 재연돼 다시 한 번 관객들을 한탄하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에서 무대용 콘텐츠로 탈바꿈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다.

SUKI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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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종학 연출과 송지나 작가가 콤비를 이뤘던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58.4%라는 전대미문의 수치를 달성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주인공이었던 최재성과 채시라, 박상원은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신예였던 고현정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삼았고, 방송 10분 전에 최종 편집을 마쳐 자칫 결방될 뻔했다는 에피소드는 방송가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뮤지컬의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당연히 기대도 높을 수밖에 없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무대의 원작은 사실 영상물이 아닌 소설이다. 첫 시발점은 1970년대 소설가 김성종이 스포츠신문에 연재했던 대하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과 제주 4·3, 그리고 이념분쟁이 극심했던 우리 근대사의 빨치산 사건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절 기구한 운명을 살게 되는 세 남녀의 행적이 절절하게 묘사돼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은 드라마보다 소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영상물의 저작권 판권보다 소설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뿐더러 무대로 구현된 뮤지컬이 영상에서 다루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할 경우 익숙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원 소스 멀티유스(OSMU)’의 부가가치 생산 공식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는 드라마를 모르는 젊은 관객들은 물론 이미 TV를 봤던 기성세대라도 작품 속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경험케 하는 묘미를 담게 됐다.

SUKI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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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다소 실험적인 무대 양식을 활용한다. 마치 패션쇼의 런웨이 무대처럼 스테이지 한가운데에 공간을 만들고 양옆으로 계단식 객석을 배치하는 실험이 시도됐다. 일명 ‘나비석’이라 명명된 이 객석의 관객들은 무대 위로 올라 극을 양쪽 사이드인 바로 옆에서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는다.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이야기의 방관자나 목격자라기보다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진짜 있음직한 이야기’를 경험하게 되는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배우들의 동작과 음악, 효과음에 따라 객석 바닥이 함께 울리는 체험은 꽤나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이 뮤지컬의 묘미다. 객석은 고정되거나 일방적인 시각만 허용받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특별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재미난 발상의 전환들이다.

가장 가슴 먹먹한 장면은 역시 아이의 죽음을 목도하는 여옥과 대치의 ‘4·3’이다. 축 늘어진 아이의 주검을 안고 오열하는 모습은 객석마저 흐느끼게 한다. 극의 처음과 마지막에 재연되는 여옥의 최후도 저리도록 아픈 회환의 감성을 격렬하게 토해낸다. 남이 아닌 우리 이야기라 더 마음 시리지만, 무대로나마 만날 수 있어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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