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키에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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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 요즘 예술과 사랑에 빠졌다. 루이비통은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등의 작품을 제품에 입혔다. 무라카미 다카시, 리처드 프린스, 구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제프 쿤스 등 현대 미술가들과의 협업도 꾸준히 선보인다. 프라다는 2018년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8명의 작품을 제품에 녹였다. 구찌는 얀 반 에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등 거장은 물론 젊은 아티스트들의 디자인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올댓아트 이윤정

올댓아트 이윤정

초고가 브랜드 에르메스도 예외는 아니다. 2017년 한 여성 예술가의 그림 2점을 구매해 그대로 스카프에 입혔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나탈리 뒤 파스키에(62)의 작품이었다. 파스키에에게 러브콜을 보낸 명품은 에르메스뿐만이 아니다. 발렌티노의 드레스, 헤이의 쿠션도 그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에 영감을 준 파스키에가 한국을 찾았다. 개인전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전시가 열리는 서울 이태원 페이스갤러리에서 지난 3월 파스키에를 만났다. 짙은 무채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스카프만큼은 원색으로 빛났다. 바로 그의 작품이 모티브가 돼 탄생한 에르메스의 스카프였다. 파스키에는 직접 목에서 스카프를 풀어 작품을 보여줬다. 작가가 그린 그림이 그대로 스카프 위에 얹혀 있었다.

[문화프리뷰]파스키에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

그는 1981년 밀라노에서 설립된 멤피스 운동의 창립 멤버다. 프랑스 태생인 작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8살에 친구들과 아프리카 여행을 떠난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패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1970년대 말 이탈리아로 건너가며 새로운 예술세계에 눈을 뜬다.

1981년 에토르 소트사스를 비롯한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파스키에의 시야는 더 넓어진다. 이들은 함께 ‘멤피스’로 활동했다.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상업 디자인에 반발해 생동감 있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멤피스 활동이 마무리되던 1987년부터 파스키에는 회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조형, 텍스타일, 패턴 디자인, 가구 디자인을 넘어 순수 회화에 입문했다.

그의 작업방식은 독특하다. 세라믹이나 나무로 입체적인 조형을 만든 뒤 그 조형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다. 3D가 2D로 옮겨지는 작업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을 ‘정물화가’라 소개하곤 한다.

이번 전시엔 그의 40여년 작업 여정을 담았다. 회화 작품은 물론 직접 만든 모형, 의자, 탁자 등 3차원적인 작품 20여점이 전시됐다. 전시명 <사물들의 불규칙한 정렬>처럼 갤러리에는 파스키에의 작품이 연대기에 상관 없이 늘어서 있다.

조금은 낯설고 이상해 보이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리듬을 만들어내며 어우러진다. 작가는 “10년 전에 그린 그림과 현재 작업한 작품이 한데 모여 있다”면서 “갤러리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스스로 작품들 간의 연관성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5월 25일까지.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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