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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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길냥이를 애도하며 부른 노래

우리 모두는 서로 얽혀 있어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내 인생의 노래]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 캣맘이 교통사고 소식을 보내왔다. 둘째 딸이 슈퍼 앞에 누워 있는 길냥이를 발견했다는 문자. 피를 흘린 채 못움직이는 냥이, 차에 치인 것 같다고. 자신도 집을 비운 상태라 대신 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약 1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막 출발했고 들어가며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당장 나 대신 봐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지난봄 길냥이 밥주다 만난 2단지 여사님, 그해 여름 탯줄 달린 새끼 냥이를 같이 구조했던 1단지 캣맘, 얼마 전 새끼 길냥이 입양을 주선한 초보 집사, 집에 계신 어머니까지 떠올렸지만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왜냐면, 슬프게도 현실적으로도 병원비가 걱정됐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군가 내야 할 예측할 수 없는 치료비 액수가 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일단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을 틀어 시간을 보냈다.

1시간 후 도착한 슈퍼 앞, 걱정된 맘에 일찍 들어왔다는 캣맘과 주민 누군가의 신고로 왔다는 구청직원을 만났다. 길냥이는 다리와 얼굴에 피를 묻힌 채 누워 있었다. 배는 따뜻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겨주려고 이마를 쓰다듬었다. 죽은 길냥이는 쓰레기봉투에 넣어 폐기물 처리장에 버린다. 행정체계 속 매뉴얼이 그렇다고 공무원이 답했다.

‘쓰레기….’ 갑자기 온라인 고양이카페에서 본 글이 떠올랐다. 죽은 길냥이를 화장해주는 동물병원이 있다고. 단골 동물병원에 전화해 화장 여부를 물었다. 몸무게 3㎏ 정도면 5만원을 받고 공동화장터로 연계해준다고 했다. 5만원. 감당 가능한 액수였다. 캣맘에게 반씩 부담하자고 했다. 길냥이를 담을 박스도 슈퍼에서 구했다.

구청직원의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냥이를 넣은 박스를 무릎 위에 올렸다. 놀랍게도 허벅지가 따뜻해졌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생명이 떠나가고 있구나, 이제 곧 차가워지겠구나. 애도하기 전 치료비부터 걱정한 고양이가 죽었구나. 고드름이 떨어지는 것처럼 깨달았다. 죽음도, 슬픔도, 5만원에 안심한 나라는 사람의 현실도.

캣맘과 헤어지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사를 읊조렸다. 지금 신세지는 곳은 24층이라 꽤 길게 흥얼거릴 수 있다.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유일하게 부를 때마다 의미를 곱씹는 노래.

‘사람들만이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중략)…/ 우리는 모두 서로 얽혀 있어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포카혼타스> OST ‘바람의 빛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아메리칸인디언 주인공이 유럽 남자에게 생명의 평등함을 일깨우며 부른 노래다. 세상의 본질을 비추는 가사에 보자마자 반한 노래. 혼자 있을 때면 항상 흥얼거리게 된다. 그러면 위안이 됐다. 죽은 길냥이의 체온을 처음으로 이어받은 이날은 더더욱.

<곽승희 독립출판물 월간퇴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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