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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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요괴를 어떻게 처치할까

‘보기왕’은 의미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존재인 동시에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요괴라고 할 수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고백> <갈증>을 만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영화가 공포물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원작을 찾아보니 <보기왕이 온다>였다. 22회 공포소설 대상을 받은 사와무라 이치의 데뷔작이다. <갈증>의 고마츠 나나가 나온다는 영화를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아직 일본에서도 개봉 전이고, 우선 소설부터 읽었다.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 한국어판 표지 | 아르테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 한국어판 표지 | 아르테

평범한 샐러리맨 다하라 히데키는 ‘보기왕’에게 쫓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 만난 보기왕은 이후 잠잠하다가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다시 나타난다. 사람의 말을 흉내내고, 대답을 하면 잡아먹히는 무서운 존재. 다하라는 오컬트 작가 노자키를 찾아가고 퇴마사 자매를 만나게 된다. <보기왕이 온다>의 간단한 줄거리를 들으면 심심해 보인다. 요괴가 있고, 쫓기고, 결국은 퇴치하는 유의 이야기는 너무 익숙하다. 그러나 <보기왕이 온다>

의 간단한 설정은 공포물의 기나긴 역사와 다양한 변주를 통해 확장되고, 이야기 속에 영리하게 침투하면서 독자를 보기왕의 공포에 동감하게 만든다.

보기왕은 대체 무엇일까. 다하라는 민속학자인 친구를 찾아가, 서양의 선교사들이 일본에 왔을 때 ‘부기맨’ 전설이 퍼진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서양의 요괴가 물을 건너온 것일까? 유럽에서 시작된 민담의 무엇이 미국으로 넘어가 부기맨이 되었고 다시 일본의 무엇인가를 만나 실체를 얻는다. 두려운 것, 금기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해리 포터>에서 볼드모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이름이 없던 존재가 외부의 무엇인가와 접촉하며 이름을 얻게 되고 때로는 다른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보기왕’은 의미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존재인 동시에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요괴라고 할 수 있다.

공포물 마니아인 사와무라 이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보다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더욱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반응 그리고 독자의 호응까지.

<보기왕이 온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히데키가, 2부는 아내인 가나가 들려준다. 1부에서 단지 요괴의 집요한 공격으로만 보이던 사건들은 가나의 진술을 통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 ‘빈틈이 있어. 굉장히 큰 빈틈이. 저래선 아무리 어설픈 혼령이라도 마음대로 드나들 거야.’ 인간도, 사회도 제대로 작동을 하면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상한 일은 흔히 있어도, 기이한 무엇인가와 연결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3부는 사건을 추적하는 노자키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3부를 통해, 독자는 보기왕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된다. 정체를 알아야 강점도, 약점도 알 수 있다. ‘멀리 이세계, 아(亞)공간, 피안, 영원불변의 나라’에 있는 보기왕을 어떻게 불러내, 어떻게 퇴치할 수 있을지 알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클라이막스는 노자키와 퇴마사 자매의 능력으로 밝혀낸 보기왕과의 혈전이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이것을 영상으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소설과 영화의 재미는 저마다 다르기에, 소설로서의 <보기왕이 온다>를 만족스럽게 읽었으면서도 어떻게 독창적인 영상으로 구현했는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고백>도, <갈증>도 훌륭한 원작을 기반으로 다시 탁월하게 각색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이니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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