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하지 말고 달려라-권력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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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참근교대를 하는 영주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참근교대를 소재로,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소영주의 고군분투를 신나게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일본 각지의 영주들이 패권을 놓고 싸우던 100여년간의 전국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승리로 끝났다. 에도(지금의 도쿄) 시대의 시작이다. 정권의 유지를 위해 중앙집권이 절실하다고 생각한 도쿠가와 막부는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를 통제하고 약화시키는 제도를 실시했다.

소노베 번의 참근교대 행렬도 | 일본 난탄시문화박물관 소장품

소노베 번의 참근교대 행렬도 | 일본 난탄시문화박물관 소장품

도쿠가와의 3대 쇼군 이에미쓰 때에 시작된 참근 교대는 영주들이 1년 주기로 에도와 영지를 오가는 제도다. 영지로 돌아갈 때에도, 정실 부인과 아들을 에도에 상주시켜야 했다. 영지에서 에도까지 오가는 것은 물론 머물 때에도 막대한 경비가 들어갔다. 영주의 재정적·군사적 약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참근교대는 일본 사회를 변화시킨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많게는 수백 명의 참근단이 일주일에서 길게는 두 달 동안 장거리 여행을 하며 경비를 쓰고, 에도에서는 다이묘 일행이 대거 머무르며 인구 100만의 대도시가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도쿄 나아가 일본의 사회·문화적 토양은 에도시대에 성립된 것이었다.

<굴하지 말고 달려라>(도바시 아키히로 저·북스피어)는 참근교대를 하는 영주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교대하는 과정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의구심을 품었지만, 중요한 것은 소재가 아니라 어떻게 풀어내는가이다.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참근교대를 소재로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소영주의 고군분투를 신나게 풀어낸 역사소설이다. 결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도 어떻게 권력에 대항할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낼 것인가. 에도 시대이건, 지금이건 인간이 살아가는 태도는 동일하다.

고난과 난관을 무슨 수로 넘을 것인가

나이토 마사아쓰가 다스리는 유나가야 번은 아주 작고, 변변한 특산품도 없다. 지난번 참근 교대 때 쇼군에게 바친 특산품은 무절임이었다. 너무 궁핍하여 금광 개발에도 나섰지만 허탕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재난을 당한다. 참근교대에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닷새 후 에도로 오라는 것이다. 명령을 거역하면 영주는 할복을 하고, 영지는 다른 번으로 넘어가거나 새로운 영주를 맞는다. 적절한 인원으로, 역참 마을에 신고를 하고 돈도 써야 하니 나이토 혼자만 길을 나설 수도 없다. 그 역시 쇼군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는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닷새 만에 에도에 갈 것인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제한된 시간과 돈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한때 동국 최강의 닌자라 불렸던 단조를 고용하여 숲속 지름길을 질주한다. 최소한의 인원이 함께 가지만, 일시적으로 사람을 고용하여 역참마을을 통과한다. 술수를 쓰면 돈을 줄이고, 시간에 맞춰 에도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난관이 있다. 쇼군의 부하이며 탐욕스러운 마쓰다이라 노부토키는 나이토의 참근을 방해하기 위한 갖가지 술수를 쓴다. 정해진 고난 이외에 어떤 난관을 무슨 수로 넘어설 것인가.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단순한 설정을 게임처럼 단계적으로 넘어가게 만들면서, 나이토의 절박한 심정에 빨려들어 순식간에 읽게 만든다.

도바시 아키히로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 표지 |부크크

도바시 아키히로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 표지 |부크크

나이토는 영주이면서도 주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린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유모에게 학대를 당했다. 트라우마 때문에 지금도 폐소공포증이 있다. 화장실에 가서도 문을 열어놓아야 하고, 가마에 타지도 못한다. 강해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어린 나이에 검술을 익혔고, 번 내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충분히 강해지고, 영주가 된 나이토는 상처를 이겨낸 자신에게 도취하지 않는다. 상처 덕분에 약한 자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나약한 놈은 죽어도 돼”라는 마쓰다이라와 약한 자들만 고통 받고 학대당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나이토의 대결을 그린다.

자신이 약한 자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나이토는 부족한 면이 있는 누구든지 곁에 들인다. 단조도 그렇다. 한때 최강이었지만,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었던 단조는 나이토와 함께 하면서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까. 믿음으로써 동료가 되는 것이 아닐까.’ 믿을 수 있으니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그들과 하나가 된다. 동료가 된 나이토와 단조는 주고받는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서로의 믿음을 받는다. “단조, 인간은 약한 존재다….” “그렇습니다. 허나 생각해 보면, 약하지 않다면 세상살이가 참으로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처절한 상황에도 잃지 않는 낙관과 유머

<굴하지 말고 달려라>가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것은 너무 우열이 명백한 대결에서 나이토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나이토는 약했고, 약했기에 강해지고 싶었고, 강해진 후에도 계속 약함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나보다 강한 이는 수없이 존재한다. 그들을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강함으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단조, 이기느냐 지느냐, 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너무 연연하지 마…. 의로운 자가 질 수도 있다. 악도 버젓이 통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싸울 힘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힘을 발휘하면 된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인 도바시 아키히로의 <굴하지 말고 달려라>는 구도가 선명하고, 주인공은 물론 작은 캐릭터까지 모두 출중하다. 그들의 마음에 끌려들어,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채 읽게 된다. 너무나 절실하고 처절한 상황인데도 소설의 전체적인 정조는 낙관과 유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단순한 정서인데 그 안에 담긴 철학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이토는 끝내 살아남았다. 지금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지옥이 따로 없었지. 하지만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하며 살다 보니 익숙해지더군. 이와키의 앞바다를 볼 수 있었으니 오늘 하루는 좋은 날, 맛있는 무절임을 먹을 수 있었으니 오늘 하루는 좋은 날. 이렇게 작은 것들을 쌓아 나간 거야.”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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