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 이종찬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 다 아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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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는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배경에는 ‘역사전쟁’이라는 요소가 있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친일·독재세력과 항일·민주화 세력의 대결이 그것이다. 뉴라이트 생각을 가진 인물을 중용한 박근혜는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넘어 국정 역사교과서까지 나가는 무리수를 범한다. 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거부한 전교조 선생님과 역사학자·민주화운동가들에 의해 촛불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 이종찬 “이승만부터 김원봉까지 다 아우르겠다”

바로 그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항일역사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사실상 중단)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임정기념관)을 국비로 신축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의회 자리에 2020년 8월까지 지상 5층·지하 1층(연면적 6236㎡)의 임정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했다. 1월 31일 정부 차원의 건립추진위도 출범시켰다. 민·관이 함께하는 이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을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전 국정원장)이 맡았다. 이 위원장은 “국가보훈처에서 수립한 건립계획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며 “내년 4월 11일 임정기념식에 맞춰 착공해 2020년 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정기념관은 세 가지를 강조하려 한다. 첫 번째는 1919년이 우리 5000년 역사에서 제국에서 처음으로 ‘민국’으로 온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민주권시대를 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건국이라 하지 말고 국민주권시대, 즉 민주공화제의 시작으로 역사를 정리하자고 했다. 두 번째는 임시정부를 세울 때 좌·우파 이념이나 지역·세대 구분이 없었다. 이승만에서 김원봉까지 모두 모여 나라를 세우자고 한 것이다. 임정기념관도 그 정신을 담아야 통일시대에 기여할 수 있다. 세 번째가 임정은 나라만 찾자고 한 것이 아니라 세계평화·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당시 대단한 것이다. 임정기념관은 이 세 가지 정신을 표현하고 담아야 한다.”

내년 4월 착공, 2020년에 완공

-외국의 독립기념관이나 레지스탕스 박물관을 가보면 국민과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 임정기념관은 천안 독립기념관과 백범기념관 등과 또 달라야 한다.
“당연히 차별화해야 한다. 임정기념관의 차별성은 앞서 세 가지 특징으로 할 것이다. 임정기념관은 특히 ITC 강국답게 최첨단 5G(세대)기술로 꾸밀 생각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 마땅한 전문가가 없어 고민이다.”

-이승만에서 김원봉까지 포괄하기 위해 이승만 아들 인수씨를 찾아간 것인가.
“찾아가 ‘밖에 있지 말고 참여하라’고 했다. 이승만은 그래도 임정 초대 대통령이다. 안창호 후손도 찾아갔다. 임정기념관은 백범에만 기울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이승만에서부터 김원봉까지 다 들어와야 한다.”

-김원봉은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6·25전쟁에 가담한 사람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원봉은 김일성에게 비참하게 죽었다. 일제가 김원봉을 잡기 위해 백범보다 10배 넘는 현상금을 걸었다. 그런 김원봉이 대한민국 천지에 갈 데가 없다. 김원봉 영혼이 구천에 떠도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김일성만 빼고, 김두봉도 넣어야 한다.”

매우 파격적인 ‘화해’다. 지금까지 정부는 일제강점기 아무리 항일투쟁 사실이 커도 북한 김일성 정권 수립에 가담했으면 서훈하지 않았다. 김원봉·김두봉은 뛰어난 항일투사였고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됐지만 북한정권 수립은 물론 6·25전쟁에도 가담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임정기념관은 매우 폭넓은 ‘역사적 화해’의 장이 될 것이다. 화해의 자리는 올 6월 1~2일 이념을 초월하는 음악회를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바로 정률성과 한유한 통합음악회다. 두 사람 모두 1930년대부터 항일투쟁을 한 음악가로 정률성은 좌파, 한유한은 우파로 분류된다. 이 위원장은 “정치색을 뺀 서정적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만 공연하려 했는데, 반응이 좋아 부산에서도 공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공연은 성남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이 함께 한다.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는 8월에 ‘레지스탕스 영화제’를 열고, 11월 23일 임정요인들이 귀국한 날을 기념해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소개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 이사장은 “임정기념관 건립과 별도로 이들 사업을 통해 분위기를 잡고 내년부터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들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우당 이회영 흉상 앞에 서 있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우당 이회영 흉상 앞에 서 있다.

우여곡절 많았던 임정기념관 건립

임정기념관 건립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설립된 것은 2004년이다.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15년 건립추진위를 구성했지만 정부는 법인승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2015년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을 찾아가 ‘지금이라도 사업을 시작해야 박 대통령도 역사에 남는다’고 설득해 겨우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면서 “그런데 정작 박승춘 보훈처장이 이를 2000만원만 사용하고 반납해 버렸다”고 말했다. 다음해 이 위원장이 야당 예결위원장을 찾아가 다시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는데 박 보훈처장은 “국민 모금해 짓고 국가에 기부채납하라”며 다시 거부했다.

정부에서 나몰라라 하던 이 사업은 다행히 서울시가 서대문구의회 건물을 제공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아쉬운 대로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건물 신축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이 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이 220억원대 부지를 제공하고, 문 대통령이 건물 신축을 결정했다”면서 “좀 비좁긴 하지만 서대문형무소가 보이고, 독립문과 남산까지 다 보여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 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물이고,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독립 100주년 기념물이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3·1혁명 100주년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이어지면서 이런 움직임은 쑥 들어갔다. 그나마 임정기념관이라도 만들어지는 것에 만족해야 할 처지다.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한완상 전 통일부 장관이다. 지난 삼일절에 한 위원장에게 기념조형물은 관심 밖이니 서두르라고 했다. 기념물은 뭘 어떻게 만드느냐는 국민적 컨센서스(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 로터리로 옮기고, 거기에 100주년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

건국절로 상징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득세하면서 항일·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와 선양사업은 크게 위축됐다. 이 위원장은 “지금 뉴라이트들이 몰라서 그렇지 이승만 대통령의 제헌의회 모든 기록에 대한민국은 기미년부터 시작했다고 돼 있다”면서 “이승만이 지하에서 ‘이런 괘씸한 놈들, 나를 팔아도 이렇게 파냐’고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당시 독립선언 어디에도 스스로 식민지로 인정한 대목이 없다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 ‘타락한 인간들’이라고 혹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뉴라이트, 식민지 근대화론자를 중용한 것은 부친의 친일사실을 숨기려 했기 때문 아닐까.

“이건 내가 실제로 겪은 것으로 1967~68년 중앙정보부에 ‘<광복군>(저자 박영박) 책을 모두 거둬들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어렵게 책을 수거해 봤더니 ‘박정희가 광복군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것을 읽고 ‘이런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 해방 후 김학규 광복군 3지대장이 만주에 있던 한국 국적 군인을 모았다. 그때 잠시 구대장으로 사병을 모아 훈련시킨 적이 있다. 이것은 해방 이후로 내가 장준하나 김준엽처럼 일제때 독립군을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책을 거두어들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종찬 임정기념관건립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정희가 직접 그런 지시를 했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그렇다며 나에게 직접 지시했다. 그래서 내가 그 책 수거작업을 했다.”

-박정희도 역사왜곡은 하려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부친의 이런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이 알았다면 뉴라이트 세력을 옆에 두고 역사왜곡을 안 했을 것이다.

“박정희도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 대목에서는 정직했다. 박근혜는 아버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승만 양자인 인수씨도 잘 모른다. 이승만의 뜻도 요즘 뉴라이트의 주장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1936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이고 종조부 역시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부통령 이시영이다. 그는 10세 때 해방을 맞아 김구 등 임정 어른과 귀국해 경기중·고와 육사(16기)를 나왔다.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겨 영국대사관 참사관, 중정 기조실장을 거쳐 1980년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 창당을 주도했다. 이후 제11~14대 4선 국회의원을 지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섰다.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안기부를 개편한 초대 국가정보원장이 됐다. 따라서 그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몇 안되는 인물이다. 이승만·박정희 다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사의식이 궁금했다.

민정당 창당 주역, DJ정권 국정원장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두환 집안은 일제강점기 먹을 게 없어 만주에서 살다 왔다. 전두환은 싫은 얘기라도 경청하는 장점이 있다. 민정당 창당할 때 내가 ‘정권의 정당성을 담보하려면 독립운동 세력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말했고, 전두환이 승낙했다. 그래서 집 없이 떠돌던 유석현 선생(그는 폭탄과 권총을 국내에 반입하는 영화 <밀정>의 실제 인물이다)을 찾아 ‘모시러 왔다’고 했다. 그때 유 선생의 첫마디가 ‘나는 일제 때도 요시찰 인물이었고, 이승만·박정희 때도 요시찰 인물이었는데, 뭐하러 찾아왔나’라고 하더라. 내가 그분을 민정당 창당주비위원장으로 모셨다. 그리고 송지영(독립운동가 겸 언론인)·윤길중(진보당 간사장) 등 진보적 인사를 정계에 진출시켰다.”

그는 3당 합당할 때 노태우 대통령에게 “그래도 독립운동가를 기반으로 세운 민정당인데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고 덤볐다. 나중에 YS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맞붙었지만 전당대회 연설 기회조차 주지 않는 불공정 경선에 분노해 탈당했다. 그는 YS정권 내내 고난의 길을 걷다 아들이 있는 영국에 갔다가 마침 영국에 있던 DJ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그는 “DJ가 1995년 조순을 서울시장에, 나를 경기지사에 출마시키려 했는데 이기택 총재가 견제해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면서 “결국 DJ가 화가 나 신당(새정치국민회의)을 창당했다”고 말했다.

1996년 그는 DJ 공천으로 종로에서 다시 도전했다. 그는 “그때 YS는 나를 낙선시키기 위해 이명박을 공천했다”면서 “노무현 후보와 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둘 다 낙선해 이명박이 국회의원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명박 의원은 비서의 금권선거 폭로로 의원직을 잃고, 재선거에서 노무현이 국회의원이 된다. 종로에서 맞붙었던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참 교묘하게 얽히고 설키는 것이 정치다.

그는 “건국절을 처음 얘기한 사람이 바로 이명박”이라며 “노골적으로 임시정부를 폄훼한 사람은 이명박·박근혜밖에 없었다. 전두환·박정희도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을 폄훼한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감옥에 가는 현실을 보면서 ‘역사는 현재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글·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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