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 지략 갖춘 합리적인 노동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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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략이 넘쳐 보였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파업을 지휘해 ‘신출귀몰’하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일리 있다고 생각됐다. 2013년 12월 22일 경찰 7000명이 건물을 겹겹으로 포위하고 그를 잡으러 출동했지만 깜쪽같이 사라졌다. 며칠 후 그는 멀쩡하게 나타나 다시 파업을 지휘했다. 덕분에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건물은 경찰의 해머로 출입문이 부서지고, 최루액으로 얼룩진 난장판이 됐다. 손님으로 와서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가 그 사무실의 ‘주인’이 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53)이다.

“1월 31일 수서고속철(SR)이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철도공사로 통합되는 과정을 밟을 것이다.(2월 6일 취임한 신임 코레일 사장도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우리 철도노조가 요구했던 철도 민영화 반대, 수서고속철 분리 반대가 모두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계속 주장했던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로 이뤄진 성과다.”

박근혜 정권은 그를 검거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 없이 체포영장만 달랑 들고 경향신문사 건물에 입주한 민주노총에 난입했다. 그때 그의 도피에 대해 ‘화장실 은신설’, ‘간부실 도피설’ ‘기자 위장설’ 등 다양한 설이 쏟아졌다. 이제 그 진실을 말해달라는 요구에 “(하~하~하) 건물구조가 워낙 복잡해 내가 숨었던 곳이 어딘지 모르겠다”면서 “당시 11명 수배자 중 7명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의 경비가 허술했다는 ‘지능적’인 대답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 지략 갖춘 합리적인 노동운동가

경찰 7000명 포위망 무력화한 주인공

위원장이 된 그는 요즘 매우 바쁘다. 조직을 개편하고 노동관계 인사들 만나랴, 진보정당 관계자를 만나랴, 무엇보다 청와대에 가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과거 ‘적대적’이던 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가 매우 빠르게 정상화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을 만나 “편했다”는 우호적인 평가를 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전신인 부산·양산본부 자문변호사, 지도위원으로 당시 노동사건을 많이 맡았다. 그래서 노동법 전문가다. 우리가 얘기하는 통상임금의 범위, 휴일연장 중복할증 등 노동 관련 용어를 거침없이 주고 받을 수 있어 편했다는 것이다. 아쉬웠던 것은 민주노총 요청에 예스냐 노냐는 즉답을 않은 것이다.”

-노사정위 대표자회의에도 참석했다. 벌써 노사정위 복귀 얘기가 나온다.

“아니다. 당시 노사정위원장이 밝혔듯이 노사정위 복귀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한국노총 위원장이 ‘3월 말까지 의제와 운영방식을 합의하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서 6자가 모두 공감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노사정위원회법을 개정해 새로운 명칭·구조·운영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노·사·정 6자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맞다.”

-새 정부 들어 한상균 전 위원장 가석방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전교조 문제는 별도 입법 없이 정부가 결심만 하면 된다. 얻은 것 없이 너무 빨리 대화 테이블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박근혜 시대에 가장 큰 거악은 박근혜 정권이었다. 그 거악이 제거된 지금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동지들과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노동의 발언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만 주장해서, 우리가 공장을 멈출 힘만 높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민주노총 요구가 이뤄진 것이 없는데 참여하는 것이 옳은가를 놓고 바로 전날까지 내부 논의를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6자가 모여 출발할 때 함께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화하면서 (한 위원장 석방, 전교조 문제· ILO 준수문제 등도) 함께 풀자고 판단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파이고, 전 한상균 집행부는 현장파로 계파가 달라 그런가.

“(하~하~) 누가 우리 보고 ‘신국민파’라 하더라.”

-그건 중앙파 아닌가.

“글쎄, 그러고 보니 그것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차이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온건파다.(하~하~하~)”

사람 사는 곳에 왜 다른 견해가 없겠나.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특히 업종도 다른 80만 조합원은 각자 생각과 파벌이 있고, 특히 정치적 입장은 많이 다르다. 민주노총에는 크게 3개, 많게는 10개가 넘는 계파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을 조정하고 이끄는 것이 위원장의 임무이고 또 정치력일 것이다. 그는 “달라진 시대에는 달라진 투쟁과 교섭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지도부이고, 그것을 잘 운영하는 집행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시대에 맞는 달라진 투쟁 강조

민주노총의 중요 계파요인 중 하나는 바로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이다. 흔히 노조의 정치참여나 정치파업을 불손하게 보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세계 노동조합과 정당 역사를 모르는 소치다. 민주노총도 강령 2호에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 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확립하고, 민주적 제 권리를 쟁취하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번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울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권오길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이 민중당 후보로 출마한다. 지방선거에는 많은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입후보한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정치세력화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며 “그러나 하나의 당을 만들어 ‘이거다’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3개 진보정당과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사회변혁당과는 원내 전술 견해가 좀 다르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적폐인 양대지침(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을 폐기했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휴일 중복할증(주 40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휴일까지 일하면 기본수당 100%와 휴일·연장수당 각 50%를 더해 200%를 지급하는 제도)을 폐지하려 한다. 이는 전반적인 임금의 하향평준화라는 평가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3년간 단계적으로 하는데 문제는 휴일 중복할증이다. 요즘 공공기관은 휴일근무 안 하고 자동차공장도 주간 2교대 근무하고 주말은 다 쉰다. 원청이 그러면 1차·2차 하청도 다 그리 한다. 휴일에 이들이 쉴 때 일하는 사람이 바로 마트나 영화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서비스직종이다. 휴일근무와 연장근무가 불가피한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에게 휴일 중복할증을 폐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1월 19일 청와대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청와대 제공

1월 19일 청와대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도 맞지 않는다.

“그렇다. 최저임금 흔들기는 자본가들의 꼼수라 생각한다. 임금이 올라 노동자들이 역사·교양을 쌓는 것을 자본가들이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 또 임금이 올라 내수시장과 소상공인이 활성화되면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던 대기업·재벌군 목소리가 축소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 경제운영 기조가 중소상인과 서민경제로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판단도 든다.”

민주노총이 매달리고 있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다. 지난 6차에 걸친 민중총궐기 요인도 최저임금 1만원과 쉬운 해고·비정규직 양산 문제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끊임없이 ‘귀족노조’라는 질시를 받아 왔다. 물론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유(有)노조·대기업·정규직’과 ‘무(無)노조·중소영세기업·비정규직’ 사이의 교묘한 ‘이간질’로 비롯된 측면이 컸다.

철도청 검수원 출신 노·정 파트너십 기대

김 위원장은 “더 이상 큰 공장도 짓지 않고 새로운 공공기관도 생기지 않아 대공장·공공부문에서 조합원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앞으로 조합원이 늘어날 곳은 건설노동자·마트 고용자·환경미화원·택배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합원을 획기적으로 늘려 ‘200만 조합원 시대’를 만들 것이란다. 이를 위한 미조직 비정규 전략조직화 사업을 위원장인 자신이 직접 맡고, 늘어난 사업비 모두 비정규직·지역사업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노총 내부 개혁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사업장 변화에 따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취지에서 정책기능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 정책연구위원에 객원연구원 제도를 도입하고 진보적 학자를 대폭 정책자문단에 보강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핵심쟁점에 즉각 사용 가능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응하는 보고서가 제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국민은 지난 촛불혁명 하면 ‘최순실 국정농단’만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촛불정신의 절반에 불과하다. 촛불혁명은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권이 자행한 각종 민주주의 퇴행, 여기에 신자유주의 농정·경제정책에 신음하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연대해 이뤄낸 산물이다. 거기에는 민주노총의 6차에 걸친 민중총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이를 알아주거나 평가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국민 홍보와 설득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 위원장도 공감하면서 “선전활동은 독보적으로 치고 나가기 쉽지 않다”며 “교육선전실도 시대 흐름에 맞게 미디어소통실로 바꾸고 기관지 <노동과 세계>도 기자를 공개모집해 분위기를 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965년 경기도 평택 출신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먼 남쪽 목포까지 피난 왔다가 다시 고향을 향해 올라오던 중 평택에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7살때 집안이 서울로 이사와 학교는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1985년 서라벌고를 나와 성균관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대학 2학년 말 학내문제로 제적되고 곧장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1987년 제적생으로 시위하다 6월 10일을 닭장차 안에서 맞았다”고 말했다.

1991년 철도청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검수원으로 서울 용산 서울동차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검수원은 기관차나 열차를 정비하는 업무로 낮에 열차가 운행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 일하는 힘든 업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김 위원장의 ‘파트너’격인 이성기 현 노동부 차관도 바로 철도청 검수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같은 검수원 노동자 출신 노·정 파트너십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그는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의 기관사·검수원 파업에 참여해 구속·해고됐다. 당시 철도노조가 있었지만 쟁의권이 없는 공무원이 파업하기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 파업으로 60명이 해고되고 20명이 구속됐다. 그는 “그때 파업하면 즉각 파면이었지만 딱 하나 있던 것이 바로 30세 젊음이었다”고 말했다. 해고된 후 5년간 민주노총 공공연맹 조직실장으로 일하다 2004년 신규채용 방식으로 철도(코레일)에 복직했다. 2007년 철도노조 위원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 2013년 다시 도전해 당선됐다.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인 2013년 12월 3일 철도 민영화 기도에 반대해 23일간 당시로선 최장기 총파업을 이끌었다. 이로 인해 2014년 2월 구속됐지만 보석으로 나와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리고 2017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위원장은 철도노조 총파업을 이끌기는 했지만 ‘지략을 갖춘 합리적인 노동운동가’라는 생각이 든다. 노·정문제보다 전통적인 노사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과제일 듯하다. 그의 생각은 80만 조합원의 대표답지 않게 평범하다. 그는 “돈이 많다고 하루 10끼 먹는 것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세 끼 먹으면서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사는 세상, 그 가운데 노동의 가치를 아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원희복 선임기자·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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