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책-시대의 아픔을 풀어낸 SF소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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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에서 남주인공의 트라우마는 1980년 광주학살에서 촉발된다. 이 소설은 세상의 구원이란 진부한 패러다임을 용서와 치유의 메시지로 업그레이드한다.

2015년 미국 양대 SF문학상 중 하나인 휴고상을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가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 독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상을 어째서 낯선 외국소설이 받았을까. 첨단을 달리는 독창적 아이디어들을 연발해서? 과학소설이 신기한 과학기술의 대변인 노릇에 시들해진 지 이미 꽤 되지 않았던가.

<삼체>의 성공은 중국 현대사의 아픔을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올올이 되살린 데 있다. 모택동의 영구집권 기반을 만드느라 혈안이 된 이른바 ‘4인방’은 똥인지 된장인지 가릴 줄 모르는 어린 홍위병들을 앞세워 단지 정적들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경제와 문화 전반을 파괴했다. 그래서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자본주의 반동으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맞아죽고 그를 인민재판에 넘기는 고발인들조차 그의 아내와 딸이 맡도록 사주한 조국의 잔혹성에 신물 난 여주인공이 천문학자가 되면서 지구침공을 꾀하는 외계인들의 앞잡이로 나선다는 이야기는 단지 공상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갖는다.

<무한의 책> 주인공은 공수부대원으로 복무하다 1980년 광주로 파견돼 양민을 학살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사진은 광주민주항쟁이 진압된 후 희생된 시민의 시신 옆에서 계엄군에게 포박당하는 생존자. / 1980년 5월 27일 경향신문 취재사진

<무한의 책> 주인공은 공수부대원으로 복무하다 1980년 광주로 파견돼 양민을 학살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사진은 광주민주항쟁이 진압된 후 희생된 시민의 시신 옆에서 계엄군에게 포박당하는 생존자. / 1980년 5월 27일 경향신문 취재사진

한 가족의 해체와 구원을 통해 본 현대사

지난해 한국에도 이에 견줄 만한 시대정신을 담은 과학소설이 나왔다. 바로 김희선의 <무한의 책>이다. 이 작품 또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잔혹한 현장을 한 가족의 해체와 구원을 통해 되돌아본다. <삼체>에서 여주인공의 트라우마가 문화혁명에서 비롯되었다면, <무한의 책>에서 남주인공의 트라우마는 1980년 광주학살에서 촉발된다. 엔터테인먼트 성향이 강한 영미권 SF소설과 달리 국내 SF작가들은 정치담론을 끌어안는 데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그런 만큼 이들의 문학적 성취는 장르문학 밖에서도 공정한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리라. 다만 순문학계의 과학소설에 대한 몰이해 못지않게 국내 SF 팬덤 일부의 속 좁은 패거리주의 또한 종종 SF 커뮤니티 출신이 아닌 작가들을 백안시하거나(‘니들이 SF에 대해 뭘 알아!’) 온당한 평가보다는 비난 일색으로 치달아 SF문학을 한층 더 게토의 변방으로 밀어낼까 우려된다. 예컨대 2016년 과천과학관 주최 제3회 SF어워드에서 노희준의 <깊은 바다 속 파랑>이 팬덤 출신 작가들의 후보작들을 제치고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하자 일부 팬들이 해당 작품을 ‘듣보잡’ 취급하며 반발한 사례는 박민규와 윤이형 그리고 이들의 선구자라 할 백민석 같은 커뮤니티 바깥 작가들의 SF 친화적인 문학실험을 과도하게 폄하했던 팬덤의 기존 관행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장르파괴와 혼종결합이 문학계만의 최신 흐름도 아닐진대 <무한의 책>을 온당히 평가하자면 작가의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바라보는 열린 눈이 필요하지 않을까. <무한의 책>에는 외견상 SF의 전형적인 소재들이 즐비하다. 일단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궤도에 들어선다(인석은 암흑물질 투성이라 천문학자들도 못 알아본다). 이어 신들이 우박 쏟아지듯 지구촌 곳곳에 빽빽하게 강림한다. 사실 이들은 신이 아니라 신처럼 보일 만한 초고도문명의 지적 존재들인데, 하필 우리의 외경심을 뒤흔들 만치 기괴한 외모라는 점(악어 피부에 키가 3m나 되는 새)에서 아서 C. 클락의 <유년기의 종말·Childhood’s End; 1953년>에 나오는 악마 형상의 외계종족을 닮았다. 이런 식으로 ‘최초의 접촉’이 일어난다. 시간여행도 한다. 2016년의 주인공이 1958년으로 가서 과거 역사에 개입하는 통에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의 ‘다세계 해석’ 이론대로 1958년 이후의 시간선(時間線)이 두 개로 갈라진다. 이로써 대체역사 혹은 평행우주가 탄생한다. SF로서의 구색은 웬만큼 갖춘 셈이다.

<무한의 책> 표지

<무한의 책> 표지

서로 물고 물리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하지만 SF라면 죄다 들고 나오는 구태의연한 설정들만으로 남다른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가 대박 난 이유는 사이버펑크 SF의 최신 아이디어들만 잔뜩 모아놓아서가 아니다. 잡다한 SF 설정들을 소위 ‘선택의 문제’라는 패러다임에다 한데 녹여 이야기에 통일성을 준 덕분이다. 눈앞의 세상을 진실이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진짜 진실을 찾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매혹된 관객들은 옴짝달싹 못하고 빨려들었다.

그렇다면 <무한의 책>의 화끈한 한 방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각 장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수수께끼 미로처럼 만들고 목격담과 회고, 심문, 신문기사, 희곡, 컬럼, 인용문, 꿈, 편지, 이메일, 문자메시지, 주(註), 부록, 위키피디아, 참고문헌 같이 온갖 표현기법들로 콜라주했다 해서 절로 작품의 격이 올라가거나 감동이 배가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별난 형식이라도 힘을 제대로 쓰자면 그에 걸맞은 주제의식과 시대정신이 한데 어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무한의 책>은 세상의 구원이란 진부한 패러다임을 용서와 치유의 메시지로 업그레이드한다. 신들은 박성철에게 그가 세상의 구원자라 일러준다. 구원방법이 뜬금없긴 하지만. 1958년의 과거로 돌아가 용인의 한 고아원에 있던 박영식(박성철의 아버지)을 2015년으로 보내면 그만이다. 신들은 박성철까지 되돌아오게 할 여력이 없으니 그가 자살하리라 예견한다. 허나 웬걸, 주인공은 이후 57년의 세월을 꿋꿋이 버텨낸다. 이유는 하나다. 천둥벌거숭이로 2015년에 떨어진 어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니까. 비록 한 우주에서는 동생을 죽이고 주인공까지 해치려 드는 광기 들린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우주에서라면 주인공은 아버지와 새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새로 생겨난 평행우주에서 박영식은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또 공수부대원으로 복무하다 1980년 광주로 파견돼 양민을 학살할 일도 없다. 그러니 지난 악몽을 견디지 못해 툭하면 정신이 돌아버릴 일도 없잖은가.

박성철도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는 정당방위였다고는 해도 부친 살해의 기억을 완전히 봉인하지 않고선 아버지처럼 미치기 직전이다. 신들의 시간여행 제안에 동의한 것은 아버지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하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1980년 광주학살의 악몽에서 원천적으로 해방되면 주인공 또한 광기로 가족을 도륙하는 아버지 탓에 고통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가해자를 끌어안는 피해자의 ‘역설적이지만 근원적인 문제해결’이랄까. 이를 위해 히치콕 영화 <사이코>처럼 부조리하면서도 정신착란적인 심리극이 한데 뒤섞이는데, 작가는 주인공의 고통과 그 원인인 아버지의 고통을 SF의 합리적 서사로만 소화하기에는 무리라고 본 듯하다. 결론적으로<무한의 책>은 과학소설이 리얼리즘 소설 못지않게 시대의 아픔을 보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이 소설은 역사적 비극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한 병사의 개인적 일탈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아들세대가 아버지세대의 허물을 용서하는 도식이 아직도 마음에 한을 품고 사는 광주의 유족들에게 씻김굿으로 일반화될 수 있을까? 다음에는 그런 과학소설을 읽고 싶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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