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의 인권은 특혜가 아니라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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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나 감옥은 예전에는 수용소였다. 격리가 목표였다. 이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치유와 교정이 목표이다. 하지만 말로만 교정일 뿐 120년 전의 러시아보다 못한 수용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인기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감옥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디테일을 가미해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 감옥 안의 모습에 드라마에서 표현한 만큼의 정감은 없다. 일단 드라마처럼 감방의 면적이 크지 않다. 카메라 앵글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모로 누워 칼 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12월 구치소에 열흘간 수용됐다가 석방된 강모씨가 ‘구치소 내부 3분의 1평(1.06~1.27㎡)에서 팔과 다리를 마음껏 뻗지 못했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과밀수용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했다”며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신영복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까지 인용하면서 “1985년에 작성된 과밀수용 현상이 3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늦어도 7년 내에 1인당 2.58㎡의 수용기준을 충족하라고 촉구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방송화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방송화면

수감자들이 겨울을 택하는 이유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전국 교정시설은 여전히 정원을 20%나 초과해 수용하고 있다. 2016년 6월 말 기준 국내 교정시설당 평균 수용자 수는 1098.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헝가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OECD 국가 교정시설 수용현황’에 따르면, 2016년 말 교도소 수용인원은 5만6495명으로 기준인원 4만6950명보다 20.3%를 초과했다. 최근 5년간 국내 교도소 수용률은 2013년 104.2%, 지난해 120.3%에서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123.1%로까지 늘어났다. 이를 담당하는 교도관 인원은 1만6000여명(2017년)에 불과하다.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가 교정시설을 관리하는 데 쓴 비용이 예비비를 포함해 200억원을 초과했다. 초과집행을 하는데도 왜 시설이 열악할까. 당초 예산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8년도 교정시설 관리비를 2700억여원으로 책정한 이유다. 물론 이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문제는 재범률이다. 재범률은 최근 5년간 22%이고 그 중 강력범죄는 71.8%이다. 지금 수형자 교화를 위한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5년 미만의 경우 4주 20일 동안 5시간 교육을 하는 것이 전부다. 예산도 73억원에 불과하다. 과잉범죄화도 원인 중 하나다. 재범률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범죄는 매우 적은 편이다. 300만에 달하는 교도소 수용자를 갖는 미국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무조건 감옥으로 보내는 법당국의 편의주의도 한몫을 차지한다. 서류상 전과자만 1100만명이다.

‘교도작업특별회계’라는 게 있다. 1299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할’에서 하는 작업을 통해 얻은 수익이 대부분이다. 759억원을 예상하고 있으니 58.4%이고, 이 중 작업비와 훈련비로 587억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 600억원이 넘는 돈은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으로 넘어간다. 내년도에는 45%나 증액된 예산이다. 결론적으로 교도작업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여유자금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수입금의 60%만을 작업장려금이라는 임금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455억원이다. 하루 평균 2만2000여명이 작업에 종사하고 있고 1인당 206만원 정도다. 200일 일한다고 치면 하루에 1만원 남짓 되는 돈을 주는 셈이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방송화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방송화면

교도소, 범죄학습의 장이 되는 악순환

교도소에서 교정교화도 안 되고 출소 이후 안전장치도 없다 보니,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갇히고, 나와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또 갇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겨울철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노숙자들까지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와 지내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변호사들 처지에서는 고객이 줄지 않는 것이 반가운 일인지도 모르지만, 약자들의 피해와 사회적 비용은 막대하다.

국가는 공단을 만들어 출소자를 채용하기라도 해야 한다. 정부의 관급공사 하청만 받아도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 이외에도 정부가 나서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적어도 편의점에서 라면 몇 개 훔치다가 다시 교도소에 갇히는 악순환은 막을 수 있다. 이래서 만들어진 곳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재범률도 1% 이하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은 280억원 정도이다. 그래서 정부는 민간에서 모금해서 부족분을 보충하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범죄자의 재사회화는 모두를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어쩌면 잡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무관심하고 법무부 교정국은 기껏해야 사고 수습에만 급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밀한 교도소에서 교도소가 범죄학습의 장이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교도관은 1만6000명이나 되지만, 본부 인력은 고작 65명이다. 교정에 관심을 두는 연구자도 거의 없다. 관련 연구는 부진하다.

얼마 전 구속노동자들이 열흘 동안 단식투쟁을 했다. 토요휴무일에도 운동과 접견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였다. 교정교화를 통한 재사회화는 고사하고 30분이라도 햇살을 조금 더 나눠달라고 단식투쟁까지 벌여야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교정 현실이다. 구한말인 1896년 민영환과 함께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에 러시아 감옥에 대한 인상을 담은 글이 있다. ‘갇힌 죄수가 가볍고 중함에 상관없이 차코(수갑)를 채우지 않고 방안에 편히 두고 식사와 차를 바친다네. 또한 100가지 공예를 가르치고 작업을 수행하니 잠시라도 고초를 잊고 집에 있는 것 같구나.’ 교도소 안에는 공원이 있고 산보도 허용됐다고 한다. 윤치호는 이러한 것이 차르 정부의 문명화를 보여주는 징표라고 보았다.

병원이나 감옥은 예전에는 수용소였다. 격리가 목표였다. 이제는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치유와 교정이 목표다. 하지만 말로만 교정일 뿐 120년 전의 러시아보다 못한 수용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인권은 그들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배려이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투자이다. 세금은 그런 데 써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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