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승수… 굳이 힘든 길을 가는 착한 검투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자가 그를 만나자마자 “여의도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이 추운 날 왜 광화문에서 서성거리느냐”고 하는 말에 그는 “허~허~허” 웃었다. 기자의 질문 의도를 그는 빨리 알아차렸다. 그는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다. 참여연대 등에서 시민운동을 20년 넘게 한 그는 이미 금배지를 달아야 했다. 물론 이것은 기자의 덕담이다.

그는 요즘 ‘비례민주주의’라는 다소 원론적인 게임의 룰(선거제도) 개편운동에 매달리고 있다. 헌법을 비롯해, 공직선거법, 그리고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정치의 ‘시작 틀’인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는 “2012년 선거제도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포럼 형태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시민운동단체로 바꾼 것”이라며 “양대노총과 민변, 참여연대, 여성단체연합 등 550개 시민·사회단체와 14개 시·도에 ‘정치개혁 공동행동’이 만들어져 있다”고 소개했다. 비례민주주의연대는 이 정치개혁 공동행동의 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개헌을 공약했다. 이에 따라 1년 넘게 국회 개헌특위와 이와 맞물려 선거법 개정을 위한 정치개혁특위도 6개월 동안 가동하고 있지만 거의 진척이 없다. 정치권에서는 ‘개헌은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하 대표는 “촛불민심을 담은 헌법과 선거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라는 매우 민감한 제안을 했다. 대부분 언론은 이를 무심히 넘겼지만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매우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이다.

[원희복의 인물탐구]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승수… 굳이 힘든 길을 가는 착한 검투사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해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한 국회 통과도 어려운 것 아닌가.

“발의라도 해야 표결로 갈 수 있는데, 지금 국회는 발의조차 않는다. 사실 발의를 하려고 해도 재적의원 과반수가 돼야 하는데 이마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발의도 못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부결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텐데.

“우리가 파악한 청와대 분위기는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란 많은 권력구조는 그대로 두고 기본권 강화 부분만 개헌안에 담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100% 부결된다. 국민은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편을 바라는데 그것을 빼고 발의하면 국회에서 ‘대통령은 생색만 내느냐’며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 민심 담은 헌법·선거법 만들어야

하 대표의 정보가 정확할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이 부결될 것이 ‘농후한’ 사안에 대통령의 최대·최고 정치행위인 개헌안을 발의할까. (실제 1969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지방자치 개혁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했으나 부결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문 대통령이 그런 모험을 할까. 지금 550개 시민·사회단체가 헌법과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87년 만든 현행 헌법은 직접민주주의제를 못담고 있다. 세계적 추세는 보완적 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국민이 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발안제도다. 국민투표도 87년 이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번 촛불에서 요구한 것처럼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제도도 없다. 지방정부와 권력배분도 중요하다. 기본권 부분도 노동단체가 요구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해야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 이밖에 환경·동물보호단체의 다양한 요구도 많다.”

-역시 권력구조 개편이 중요하지 않나. 하 공동대표는 총리를 국회에서 임명하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미국에 비해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다. 예산·법률안 제출권이 대통령에게 있지만 미국은 국회가 주도권을 갖는다. 우리 대통령은 인사·예산·입법권에서 미국보다 권한이 크다. 감사원도 미국은 국회(국회로부터도 독립돼 있지만) 소속이다.”

-하지만 미국은 국회가 국무위원(장관)을 해임할 권한도 없고, 부통령 임명에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다. 우리 국회는 미국이나 프랑스에 없는 대통령 탄핵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 그런 권력구조적 면에서 우리 국회의 권한도 크다.

“그런 점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헌법·정치학자들은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했을 때 한국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특히 우리는 국회 선진화법으로 대통령은 야당이 반대하면 어떠한 법안도 처리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이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해 국회의장에게 사정하다 결국 국회에서 탄핵당한 것이 극명한 예다.

“개인적으로 국회 선진화법은 좋은 법은 아니라고 본다. 이원집정부제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국회 개헌특위는 권력구조와 관련해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유럽 순수내각제는 맞지 않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감사원 등 입법·예산과 관련된 권한을 국회로 옮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은 유명무실했다. 그래서 총리를 국회가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법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사실 요즘은 뜸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 대안으로 프랑스 이원집정부제를 운운한 학자나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은 중임이 가능한 5년 임기(2008년 전까지는 7년 임기)로 국회 해산권은 물론 긴급조치권까지 있다. 대통령이 사법부의 장격인 헌법평의회 의장은 물론 모든 방송사 사장(프랑스는 모두 국영방송)까지 임명한다. 그래서 미테랑 대통령은 14년 집권했다.

이에 비해 우리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이 없고, 오히려 국회는 대통령 탄핵권이 있다. 단지 프랑스는 1965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투표가 시행되면서 다당제가 잉태됐다. 결국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중심제는 양당제에 소선거구제로, 결선투표 있는 대통령 중심제는 다당제와 비례대표제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 권력구조와 정당제, 의원 선거제도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

비례민주주의연대가 요구하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는 정당선거 투표 결과로 먼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고, 나머지를 지역구 의석으로 채우는 방법이다. 소수의견도 의석에 반영되는 장점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문제는 지역구가 대폭 주는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는 국회의원 수를 360명으로 늘리는 안을 만들었다. 지역구 260개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만 100명으로 늘리면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 대신 국회 예산을 10년간 동결, 세비도 깎고 보좌진도 축소하는 조건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은 여야 전체의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국민을 설득한다고 하지만 의원정수를 60명이나 늘리는 것을 국민이 쉬 납득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여야는 내심 ‘나눠먹기 좋은’ 양당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는 이번 지방의회 선거구 획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최근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2~3명 선출하던 기초의원 선거구를 4명을 뽑는 대선거구로 바꾸자 양당이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인 선거구가 3분의 2로 구의원 419명을 선출하는데 415명이 양당 소속이고 무소속 3명, 소수당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이번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30개 4인 선거구로 바꾸자, 기존 양당이 반발하고 있다.”

기초의원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소수정당 육성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중정당이 아닌, 녹색당과 같은 시민정당이나 민중당·노동당과 같은 이념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대선거구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기성 거대 정당은 기득권 때문에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 세상은 아니, 정치는 그렇게 냉정한 것이다. 하 대표는 대통령 공약, 진정성 등의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치공학으로 3차·4차 방정식을 풀 때 그는 원론적인 산술을 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 솔직함과 원칙이 시민운동가의 가장 큰 자산이다.

녹색당 창당, 20대 총선 서울서 낙선

하 공동대표는 1968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녀 사실상 부산 출신이다. 87년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때 공인회계사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서 몇 달 근무했지만 “공인회계사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이 아닌, 기업의 눈치를 보는 존재였다”고 실망, 다시 사법고시를 봤다. 80년대 대학생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도 동아리활동이나 학내시위에 참가했지만 ‘다행히’ 감방은 가지 않았다.

그는 사법연수원 1년차인 1996년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할 때 자원봉사를 한 인연으로 아예 참여연대에 상근했다. 그는 참여연대에서 입법·사법·행정부·재벌 감시운동과 정보공개운동을 통해 적폐와 맞섰다. 이때가 그의 전성시대 아니었을까. 아마 이때 그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광정하는 검투사로서 강한 쾌감을 맛봤을 것이다.

2004년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를 통해 지역시민운동을 하다 2006~2009년 제주대에서 법학을 가르쳤다. 그러던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보고 녹색당을 창당했다.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했으나 참담하게 패했다. 지난해 9월까지 녹색당 공동위원장을 했지만 지금은 평당원이다.

-참여연대 출신으로 박원순 맨 혹 박원순 계보라고 할 수 있나.

“(하~하~) 그렇지 않다. 나와 박원순 시장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하~하~)”

-많은 참여연대 출신이 청와대나 기성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그런 편한 길을 두고 왜 녹색당을 만들어 험한 길을 가나.

“(하~하~) 나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제도를 바꿔야 하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세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성 정치권에 들어가 정치를 바꾸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지만 새로운 주체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다. …나는 새로운 대안정당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하 공동대표는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주 웃었고, 웃음도 해맑았다. 그는 회계사·변호사 다 휴업상태로 수입도 별로 없다. 1996년 결혼한 그는 “가장은 아니고 가족 구성원으로 아내가 직장을 다닌다”며 웃었다.

그는 분명 정치를 하고 있다. 참여연대 시절 정치권 적폐와 맞선 시민투사의 성과를 잊지 못해서일까.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정치판을 개혁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검투사, 혹은 고독한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이에 그는 “기성 정치에 들어가 에너지만 다 쏟고 바꾸지도 못하느니 당장은 어렵고 멀어 보여도 새로운 정치집단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지금까지 시민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혼자 하지 않았고, 늘 많은 사람이 같이 했고, 그 수도 점점 많아졌다. 지금까지 많은 진도가 나갔기 때문에 앞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가 만든 녹색당은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랜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그만큼 우리 정당이 역동적이며 취약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그의 뒤에는 550개 시민·사회단체가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하 대표는 고독한 검투사가 아닌 ‘착하고 집요한’ 검투사다. 삭막한 지금 시대에 그런 검투사가 있다는 사실은 적잖은 위안이다.

<글·사진 원희복 선임기자·우철훈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원희복의 인물탐구바로가기

이미지